전국 4개 항만공사(PA)를 통합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나오자, 부산항만공사 직원들은 삶의 터전이 바뀔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술렁이고 있다. 노조와 지역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도 정부는 통합 태스크포스(TF)를 꾸리며 강행 의지를 표명했다.
"부산에 살려고 BPA 들어왔는데…" 직원들 '당혹'
8일 부산 중구 부산항만공사(BPA)에서 만난 직원들에게 'PA 통합' 이야기를 꺼내자, 황급히 주위를 살피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외부에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는 부연 설명이 뒤따랐다.어렵게 입을 연 직원들은 복잡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한 일선 직원은 "2030 세대는 부산에서 결혼하고 아이 기르고 싶어서 BPA에 들어온 사람이 많은데, 통합되면 다른 지역으로 발령 날 수도 있으니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라며 "실제로 사내 익명 게시판에 이런 내용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내부에서는 정부가 통합 명분으로 내세운 논리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항만에 대해 잘 모르고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라며 "정치권 입김으로 무산된 공항공사 대신 만만한 PA를 통합하려 한다는 이야기부터, PA 통합 본사도 부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 둘 예정이라는 소문까지 돌아 혼란스럽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무현 지방분권 정책으로 PA 출범…중앙집권으로 '유턴'
1990년대까지 전국 주요 항만 개발과 관리·운영은 중앙정부가 도맡았다. 이 권한을 해외 선진 항만처럼 지역 PA로 옮기는 '항만공사화' 정책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도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항만공사법이 제정됐고, 이듬해 BPA 출범을 시작으로 지금과 같은 구조가 만들어졌다.2004년 BPA 창립행사에 참석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살림을 내주면서 지방 자율권이 존중되는 공사로 구성됐는데, 중앙정부가 걱정이 있는 모양"이라며 "앞으로 자율권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 지방은 지방이 주도하는 지방화시대로 가야 하고, 그렇게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항만공사가 지방분권을 위한 정책인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주도해 출범한 PA를 통폐합해 중앙집권화해야 한다는 말은 이명박 정부에서 처음 나왔다. 하지만 PA 설립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역사회 반발에 부딪혔다. 또 2011년 국토해양부가 의뢰한 연구에서 PA 통합에 따른 연간 절감 효과가 50억 원에 불과해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결과도 나오면서 통합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현재 이재명 정부에서 또다시 효율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통합을 발표한 상황이다.
"시대 역행" 시민단체·노조 반발에도…통합 TF 발족
부산을 비롯한 PA 소재지 시민단체들은 이재명 정부의 PA 통합 정책이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며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해양수도부산발전협의회 등 4개 지역 300여 개 시민단체는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가 공공기관 효율화를 이유로 추진하는 통합은 오히려 중앙집권적인 비효율을 초래해 지역이 주도하는 지방분권형 균형발전이라는 당면한 국정과제에도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하다"라고 비판했다.전국 4개 PA 노조도 이날 오전 재정경제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항만공사는 중앙집중적 항만관리에서 벗어나 항만별 자율성과 전문성, 지역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 세계 주요 항만도 지역분권형 운영체계를 지배적으로 채택하고 있다"라며 "정부는 통합이라는 결론부터 정하지 말고 효율성을 증명해야 하며, 국회는 노무현 정부 당시 여야가 합의한 항만공사법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말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정부는 통합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전날 전국 항만공사 등 산하 공공기관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공공기관 기능개혁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TF 첫 행보로 해수부는 이날 오후 차관 주재로 '킥오프 회의'를 연다. 이 회의에는 4개 PA 기관장이 참석해 통합에 필요한 사항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