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쫓기듯 비워진 靑 정책실장, 李대통령 선택이 곧 메시지다

연합뉴스

"그 시절 일이 너무 힘들어,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책실장이라는 자리는 육체적으로 철인(鐵人)을 요구하고, 정신적으로 만능, 무소부지의 철인(哲人)을 요구한다. 도저히 인간이 맡을 수 없는 자리'라고 토로할 정도였다"(이정우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한 청와대(대통령실) 정책실장이라는 직책은 참여정부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지로 신설된 것이다. 초대 정책실장이었던 이정우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는 한겨레21과의 회고록에서 "정부 부처 중 외교, 국방, 통일을 제외한 모든 부처의 모든 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일에다 덧붙여 대통령 국정과제인 장기적 정책과제의 추진까지 담당하는,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였다"며 "철인을 요구했다"는 비유로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 탄생한 청와대 정책실장직은 진보 정권 들어서 강해지고, 보수 정권 들어서 약해지는 패턴을 보여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소멸됐다 겨우 소생했고, 박근혜 정부 때 아예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활했다. 특히 장하성-김수현-김상조로 이어진 학자 출신 정책실장들은 거침없는 행동과 언변으로 정권의 얼굴들로 기억될만큼 존재감이 상당했다.

윤석열 정부 때는 있으나마나했던 정책실장직이 이재명 정부 들어 다시 세간의 중심에 선 것도 하나의 패턴으로 읽힌다. 초대 김용범 정책실장은 경제관료 출신임에도 이번 정부에서 대통령의 전폭적 신임을 얻으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본업인 금융정책은 물론이고 부처 곳곳에 김 실장의 파워가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 힘이 과했던 것일까. 환율을 잡겠다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식을 두배로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졸속으로 만드는데 앞장서는 바람에 지난 1일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했다.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그런데 김 실장의 사의는 절차상으로, 시기상으로 여러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첫째, 정책실장이 후임을 비워두고 갑작스럽게 사퇴한 경우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 후반 김상조 정책실장이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전세 보증금을 올린 것이 드러나 '내로남불' 비판이 고조될 때, 문 대통령은 직접 그를 경질하면서도 바로 후임을 발표했다. 이처럼 경질성이라 할지라도 업무 연장을 위해서는 '교체'가 자연스러웠다. 실장직을 비울 수밖에 없는 배경이 무엇인지 정치권 안팎에서 추측이 난무하다.

둘째, 부처 개각이 발표된지 이틀도 안돼 정책실장이 단독으로 사퇴한 것도 부자연스럽다. 이번 개각에 대한 안좋은 평가와 여론 악화를 의식했다기에는 그 시기가 48시간 미만으로 너무 짧다. 김 실장은 그주 주말만 해도 통상적인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 인사를 준비할 틈도 없이 급하게 내보내야 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하다. 언젠가는 본인이든,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청와대 정책실장직에 대한 또 다른 패턴은 어느 정권이든 후반으로 갈수록 색이 옅은 관료 출신들을 등용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가장 마지막에는 기재부 출신 이호승 정책실장을 기용했다. 다른 말로 하면, 정권의 캐릭터가 약화되고 힘이 빠질수록 관료들에게 열쇠를 넘긴다는 말이다.

아직 이재명 정부 집권 초반이다. 파리를 방문중인 이 대통령이 귀국 직후 정책실장을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 후임으로 관료, 학자, 야당 정치인 출신 등 다양한 이름들이 거론된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대통령의 국정 수행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이미 경제부총리는 관료 출신을 지명했다. 청와대 정책실까지 관료 사회에 맡길 것인지, 또다른 '철인'을 구할 것인지. 이 대통령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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