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읽는다더니 빵은 산다…2030 '텍스트힙'의 식탁 점령

민음사빵 품절부터 영풍문고 파스타까지 확산
수집·인증·경험으로 확장되는 문학 협업 상품
국민 독서율은 낮아졌는데 책은 더 팔리는 현상


독서율은 낮아졌지만 책을 둘러싼 소비는 오히려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책과 문장을 자신의 취향으로 드러내는 '텍스트힙' 흐름이 2030세대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출판 콘텐츠가 편의점 빵, 뷔페 메뉴, 디저트 상품, 문구류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는 줄어들고 있지만, 책의 표지와 문장, 작품 속 장면, 서점의 분위기는 새로운 소비 소재로 다시 쓰이고 있다.

9일 출판·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텍스트힙은 단순한 독서 유행을 넘어 책을 매개로 한 결합상품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출판사와 서점, 독서 플랫폼은 젊은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식품·외식업계는 책이 가진 취향성과 수집 욕구를 상품에 결합하는 방식이다.

민음사빵·영풍 메뉴·밀리 생크림빵까지 등장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GS25가 출판사 민음사, 캐릭터 지식재산권(IP) '오늘의 귀여움'과 협업해 선보인 '민음사빵'이다. 제품에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 시집 표지를 활용한 투명 책갈피 20종 가운데 하나가 무작위로 들어 있다.

지난달 21일 출시된 민음사빵은 전국적인 품절 현상을 빚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까지 누적 판매량은 49만개를 기록했고, 구매 고객 가운데 2030 여성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일부 매장에서는 입고 직후 제품이 모두 팔리면서 점포별 재고를 확인할 수 있는 '우리동네GS' 앱 이용도 늘었다.

민음사빵의 흥행은 빵 자체보다 '책갈피'가 만든 수집 구조에서 비롯됐다. 소비자들은 원하는 책갈피를 얻기 위해 제품을 반복 구매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구매 인증과 교환 글이 잇따랐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일부 책갈피가 빵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이는 과거 캐릭터 스티커나 아이돌 포토카드가 만들었던 무작위 수집 방식이 문학 콘텐츠와 결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수집 대상이 만화 캐릭터나 연예인 사진이 아니라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 '햄릿', '동물농장' 등 세계문학 표지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문학 작품이 읽을거리인 동시에 소장하고 보여주는 취향의 기호가 된 셈이다.

GS25가 출판사 민음사, 캐릭터 IP '오늘의 귀여움'과 협업해 선보인 '민음사빵'(왼쪽), 영풍문고 협업 팝업테이블 'TAKE BOOK CLUB'. GS리테일·아워홈 제공

책의 영향력은 편의점 매대를 넘어 외식 공간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아워홈이 운영하는 뷔페 브랜드 '테이크' 종각 1호점은 영풍문고와 협업해 오는 11월 10일까지 '테이크 북클럽' 팝업테이블을 운영한다.

테이크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 등장하는 클램차우더, 아베 야로의 만화 '심야식당'에서 착안한 소시지 나폴리탄, 테라사와 다이스케의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모티브로 한 장어 오이 호소마끼 등을 메뉴로 구성했다. 허영만의 '식객'에서 다룬 오미자 화채와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모티브로 한 스웨디시 미트볼도 협업 메뉴에 포함됐다.

이 기획은 책 속 장면을 실제 음식으로 옮겨온다는 점에서 텍스트힙의 또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독자는 작품을 완독하지 않았더라도 책의 세계관을 음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소설과 만화 속 음식은 단순한 메뉴 설명을 넘어 식사에 이야기를 붙이는 장치가 된다.

테이크 종각점이 영풍문고가 입점한 영풍빌딩에 자리한 점도 협업의 배경이 됐다. 서점과 식당이 같은 건물에 있다는 공간적 조건을 활용해 책과 식사의 동선을 연결한 것이다. 책을 읽는 경험이 서점 안에 머무르지 않고 식탁 위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2030 '텍스트힙'의 역설…음식+굿즈 결합


독서 플랫폼도 식품 협업에 뛰어들었다. 연세대학교 연세유업은 kt 밀리의서재와 협업한 '연세우유 밀리의 생크림빵'을 9일부터 전국 CU 매장에서 단독 판매한다. 밀리의서재 서비스 출시 10주년을 기념한 제품으로, '생일 케이크' 콘셉트를 적용했다.

제품은 밀리의서재 브랜드 색상인 노란색에서 착안해 고구마맛 생크림을 넣고, 촛불 모양 아트카드를 동봉했다. 카드 뒷면에는 밀리의서재 구독 혜택을 담은 QR코드도 넣었다. 소비자가 빵을 먹는 경험을 전자책 플랫폼 이용으로 연결하려는 구성이다.

연세유업은 지난해 9월 교보문고와 협업한 '연세우유 교보문고맛 생크림빵'을 출시해 2주 만에 25만개를 판매한 바 있다. 당시 제품은 서점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맛과 포장, 개인 맞춤 도서 추천 카드 등을 결합했다. 이번 밀리의서재 협업은 같은 독서 테마 상품의 후속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연세우유는 지난해 9월 교보문고와 협업한 '연세우유 교보문고맛 생크림빵'에 이어 올해는 밀리의서재와 협업한 '연세우유 밀리의 생크림빵'을 출시했다. CU 제공

이 같은 결합상품이 잇따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책은 상대적으로 저속한 매체로 여겨졌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취향을 드러내는 상징 자산으로 다시 읽히고 있다.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문장을 좋아하는지, 어떤 표지를 소장하는지는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 된다.

특히 2030세대는 책을 반드시 완독의 대상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책갈피를 모으고, 책 표지를 촬영하고, 서점 팝업을 방문하고, 작품 속 음식을 먹고, 관련 굿즈를 공유한다. 독서가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행위였다면, 텍스트힙은 읽기와 수집, 인증, 경험을 함께 묶는 문화에 가깝다.

독서율 하락과 책 소비 확산이 동시에 나타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38.5%로 조사 시작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20대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75.3%로 전체 성인 평균의 약 두 배에 달했다.

전체 독서율은 낮아졌지만 젊은 층 일부에서는 책을 둘러싼 소비와 방문 경험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지난해보다 1만명 늘어난 16만명이 찾았다. 민음사가 서울 용산에서 진행한 팝업 행사에도 하루 1000명 이상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인 독서율 38.5%로 추락 …20대 독서율은 75.3% 달해


문구와 생활용품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책갈피, 북커버, 북클립 등 독서 관련 상품은 책을 읽는 데 필요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취향을 표현하는 물건이 됐다. 책을 들고 다니고, 책상 위에 올려두고, SNS에 남기는 행위까지 하나의 소비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출판계 입장에서도 텍스트힙은 의미가 작지 않다. 서점 방문과 종이책 구매가 줄어드는 환경에서 책의 표지와 문장, 작품 속 장면이 다른 산업과 결합하면 새로운 독자 접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민음사빵의 책갈피가 세계문학전집을 다시 노출시키고, 영풍문고 협업 메뉴가 작품명을 식탁 위로 불러내는 식이다.

식품·외식업계가 책과 손잡는 이유도 같다. 기존의 맛과 가격 경쟁만으로는 젊은 소비자의 관심을 오래 붙잡기 어렵다. 문학과 서점, 독서 플랫폼은 상품에 이야기를 부여한다. 소비자는 빵이나 파스타를 사면서 동시에 자신이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드러낼 수 있다.

2026 서울국제도서전 관람객들이 출판사들의 책들과 굿즈, 팬시를 살펴보고 있다. 김민수 기자

다만 텍스트힙이 곧바로 독서 문화의 회복을 뜻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책을 소재로 한 상품 소비가 실제 완독이나 지속적인 독서 습관으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학이 소비재의 장식으로만 쓰일 경우 일시적 유행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최근의 흐름은 책이 여전히 강한 문화적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독서율은 낮아졌지만 책은 다른 산업으로 이동해 새로운 접점을 만들고 있다. 문학은 표지와 문장, 굿즈와 음식, 공간 경험을 통해 젊은 세대의 일상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있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젊은 세대에게 책은 더 이상 조용히 혼자 읽는 대상에만 머물지 않는다"며 "읽고, 모으고, 인증하고, 공간에서 경험하는 방식으로 책의 소비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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