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국 항만공사를 통합하겠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국내 최대 항만 소재지인 부산시는 여전히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논란이 불거진 이후 정부 방침이 정해진 뒤까지 수개월 동안 침묵이 이어지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항만공사 통합' 반발 확산에도 부산시 "공식 입장 없다"
9일 취재를 종합하면 전재수 부산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부산시-국민의힘 부산시당 예산정책협의회 이후 항만공사 통합안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당시 전 시장은 통합을 수용하기 쉽지 않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아직 정부 입장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사실상 대답을 유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전 시장의 발언이 나온 바로 다음 날, 정부는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부산항만공사를 비롯한 전국 4대 항만공사 통합을 공식화했다.
이 통합안에 따르면 부산과 인천, 울산과 여수광양항만공사는 가칭 '한국항만공사'로 통합된다. 정책과 기획 기능은 통합공사 본사로 일원화하고 기존 4개 공사는 통합공사 산하 지역지사로 개편된다. 다만 통합공사 본사를 어디에 둘지, 언제 출범할지, 지사별 권한과 운영 규모는 어떻게 할지 등은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정부가 통합 방침을 공식 발표하자, 4개 항만공사 노조는 공동성명을 내고 전면 투쟁을 선언했다. 노조는 노정협의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통합이 일방적으로 확정됐다며, 명분 없는 강제 통합을 즉각 철회하고 객관적인 근거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시민사회도 반발하고 있다. 해양수도부산발전협의회는 통합에 반대하는 이유를 담은 입장문을 냈다. 항만공사 통합은 해운·물류산업의 미래와 지역경제, 지방분권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이번 결정은 국가 항만경쟁력과 지방분권을 훼손하는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항만공사 통합은 기능과 배후산업, 물동량과 전략이 다른 항만을 하나로 묶어 경쟁력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산시의회 해양도시안전위원회가 '전국 4대 항만공사 강제 통합 추진 철회 촉구 결의안'을 의결하는 등 정치권도 합세했다. 시의회 역시 지역 항만의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약화하고 현장의 요구를 제때 반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하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반면 부산시는 반대 논리와 반발이 전방위로 확산하는 와중에도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당시 부산시의 논리 역시 "정부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통합을 공식화한 뒤에도 이 입장만 반복하며, 결국 수개월 동안 '침묵'하고 있는 상황이다.
'통합 본사 유치·현안 부담' 부산시 침묵 배경에 관심
시가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그 배경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지고 있다. 먼저 정부의 통합 방침을 거스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향후 통합 본사를 부산에 유치하는 등 '실익'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부산시가 반대 깃발을 들었다가 통합이 성사될 경우, 향후 본사 유치를 주장할 입지가 좁아진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공공기관 2차 이전, 부울경 광역화, 북항 재개발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시 관계자는 "통합 관련 기본적인 입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면을 고려했을 때 지금 상황에서 공식적인 입장이나 대응 방침을 밝힐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라며 "부산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정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부담에도 항만공사 통합안이 지역균형발전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부산항의 경쟁력 약화가 민선 9기 부산시정의 최종 목표인 '해양수도 완성' 구상 자체를 흔들 수도 있는 만큼 적극적인 입장 표명과 현안 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지방분권균형발전 부산시민연대 박재율 상임대표는 "부산시도 항만공사 통합이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북항 재개발 문제나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과제가 발등에 떨어져 있다 보니 목소리를 조절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시 입장이 이해는 되지만, 최소한의 범위에서라도 (부산시가)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부산만이 아니라 울산과 여수광양, 인천 등 관련 지역 단체장들과 공식·비공식 논의를 거쳐 정부에 공동 건의하는 방안이라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항만공사 소관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전날 4대 항만공사 사장이 참석한 '공공기관 기능개혁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연말까지 통합 로드맵 초안을 만들고 내년 초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