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로테르담 도심에서 차로 약 20분 떨어진 리더케르크. 7일(현지시간) 찾은 한 아파트 단지는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건물 외벽에는 아직 비계가 둘러져 있었고, 내부 천장에는 초록색 배관과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건물 옥상에 올라서자 'LG' 로고가 박힌 흰색 히트펌프 실외기 수십 대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아파트 내부에는 각 가구마다 LG전자의 공기열원 히트펌프 냉난방시스템 '써마브이(Therma V)'와 온수를 저장하는 버퍼탱크가 설치되고 있었다.
102가구가 들어서는 이곳에는 써마브이와 LG전자가 지난해 인수한 노르웨이 온수 솔루션 기업 OSO의 스테인리스 버퍼탱크가 함께 공급됐다. LG전자가 유럽 주거단지에 두 제품을 하나의 패키지로 공급한 첫 사례다. 기존에는 건설사가 히트펌프와 버퍼탱크 공급사를 각각 선정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LG전자가 용량과 배관, 제어 방식 등을 통합 설계해 공급한다.
B2C 넘어 B2B로…102가구가 갖는 의미
이번 공급은 LG전자가 기존 B2C 중심의 가전 사업에서 B2B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LG전자는 최근 건설사나 주방가구 업체 등을 대상으로 여러 제품과 솔루션을 함께 공급하는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백승태 LG전자 HS사업본부장도 베를린 IFA 2026 기자간담회에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선하기 위해 B2B 쪽으로 역량을 모으는 중"이라며 "B2B 사업을 늘려가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과 달리 대규모 공동주택 중심의 주거문화가 상대적으로 덜 발달한 유럽에서 102가구 규모의 아파트에 냉난방 솔루션을 패키지로 공급했다는 것은 향후 건설사 등을 상대로 한 수주 확대에 활용할 수 있는 레퍼런스를 확보했다는 의미도 있다.
탄소 줄여야 하는 유럽…히트펌프가 뜨는 이유
히트펌프는 LG전자가 유럽 B2B 시장을 공략할 핵심 제품 가운데 하나다. 외부 공기의 열에너지를 끌어와 냉난방과 온수에 활용하기 때문에 가스를 직접 태우는 화석연료 보일러의 대안으로 꼽힌다.
특히 탄소배출 감축과 에너지 효율 규제가 강한 유럽에서는 주택의 냉난방을 친환경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LG전자에 따르면 써마브이는 자체 인버터 스크롤 컴프레서를 활용해 투입한 전력 대비 약 4~5배의 열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며, 화석연료 보일러와 비교하면 에너지 사용량을 약 40~60% 줄일 수 있다.
LG전자가 단순히 히트펌프 한 대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온수 저장과 제어까지 하나로 묶은 시스템 공급에 나선 것도 이런 시장 환경을 겨냥한 것이다.
친환경성과 에너지 효율을 갖추면서 실제 주거단지에 적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냉난방 솔루션이라는 점을 입증하면 유럽 내 B2B 사업을 확장할 여지가 커진다.
'유럽의 관문' 네덜란드서 만든 레퍼런스
특히 첫 패키지 공급처가 네덜란드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네덜란드는 유럽 대륙의 주요 시장을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과 로테르담항을 기반으로 오래전부터 '유럽의 관문'으로 불려왔다. 시장 개방성이 높고 새로운 기술과 제품에 대한 수용도도 높아 글로벌 기업들이 신기술뿐 아니라 소비 트렌드와 마케팅, 유통 전략, 규제 대응 등에 대한 유럽 시장의 반응을 살펴보는 '바로미터'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LG전자는 이미 프랑스와 스페인 등 남유럽 5개국 10만 가구 이상에 히트펌프를 공급했고, 북마케도니아 1500여 가구 규모 주거단지에도 제품을 공급했다. 독일과 영국 등에서도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있다.
결국 이번 리더케르크 프로젝트는 '제품 판매'에서 '시스템 공급'으로, B2C에서 B2B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확보한 유럽 내 새로운 레퍼런스라는 데 의미가 있다. LG전자는 '유럽의 관문' 네덜란드의 대규모 주거단지에서 시작한 첫 패키지 공급을 유럽 친환경 냉난방 B2B 시장을 넓히는 교두보로 삼고 있다.
LG전자 베네룩스법인 ES사업 리더 로빈 클라우스(Robin Klous)는 "LG전자의 압축기와 모터, 열교환기 등 핵심부품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히트펌프 솔루션의 신뢰성은 이미 시장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아 왔으며, 버퍼탱크뿐 아니라 다양한 탱크 라인업과 히트펌프를 결합한 온수 솔루션을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