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신약 로비' 의혹에 등장하는 정모 부장판사를 둘러싸고 정치권 안팎의 의구심이 확산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물론 핵심 인물인 브로커 양모씨와 친분이 있는 정 판사가 검찰 수사 당시 영장 심사를 담당한 게 적절했냐는 의문에서다.
특히 검찰의 주요 수사기간 동안 정 판사가 법원의 영장전담판사를 지낸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되는 모양새다. 수사 과정에서 청구되는 검찰의 각종 영장 안에는 피의자 인적과 혐의 등 민감 정보가 상당하다. 주요 인물들과 사적 친분이 있는 정 판사에게 과연 밀행성과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었겠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 후보자가 연루된 이른바 제넨셀 신약 로비 의혹은 2022년 11월 한 공익 제보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사건이다. 서울서부지검은 이듬해 1월 제넨셀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사를 본격화했다. 사건은 2024년 12월 브로커 양씨와 제넨셀 대표 강세찬씨를 재판에 넘기면서 일단락됐다. 이때 김 후보자는 기소유예됐다.
정 판사는 검찰의 수사가 막 물꼬를 트기 시작한 2023년 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관할인 서울서부지법에서 영장전담판사를 맡았다. 약 2년에 걸친 검찰 수사 기간 가운데 초반 1년간은 영장 심사에 관여한 셈이다.
검찰은 정 판사가 영장전담판사로 있는 동안 압수수색 영장을 비롯해 통신·계좌 등 수사에 필요한 영장을 수차례 청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후보자·브로커 양씨와 이미 몇해 전부터 알고 지낸 정 판사가 이들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 상황을 몰랐을리 없다고 보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 판사는 전담 기간 내내 영장심사를 회피하지 않았다.
공정성에 의구심을 키운 요소는 강세찬씨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사례다. 강씨는 2023년 12월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정 판사가 기각하면서 풀려났다. 영장에는 강씨와 브로커 양씨, 김 후보자로 이어지는 신약 로비 정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의 영장이 꺾이자 당시 검찰 내부에서는 브로커 양씨와 김 후보자, 정 판사의 사적 친분이 기각 판단에 작용한 게 아니냐는 물음이 이어졌다고 한다. 검찰이 정 판사가 아닌 다른 영장전담판사가 심사하는 일정에 맞춰 영장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발부 가능성을 높인 배경이다.
기각 한달 만인 2024년 1월 검찰은 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고, 이를 심사한 송모 영장전담판사는 정 판사와 달리 발부 결정을 내렸다. 정 판사는 이후 서울중앙지법으로 전보됐다.
정치권에서는 정 판사의 공정성을 꼬집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무소속 한동훈 의원은 수사 당시 대검찰청이 대법원에 정 판사를 강씨 사건 영장심사에서 배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밀행성의 담보 여부를 놓고도 의심이 커지고 있다. 정 판사와 김 후보자의 인연이 20년도 넘게 오래된 데다 '단짝'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깊은 친분을 드러내온 탓이다.
양씨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녹취록을 보면, 김 후보자는 2021년 9월 6일 정 판사와 함께 있던 자리에서 양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당시 김 후보자는 양씨에게 "내가 가장 친한 내 아우, 동생 정 부장판사 기억나?"라고 소개했고, 양씨는 "완전 기억난다"고 답했다.
전화를 넘겨받은 정 판사는 양씨에게 "우리가 한 3년 전에 한번 봤잖아요"라며 "사업은 어때요. 시간 정해서 조만간 만납시다"라고 말했다. 통화가 이뤄진 때는 김 후보자가 김강립 당시 식약처장에게 제넨셀 임상시험 승인 민원을 전달하기 한달여 전이었다.(관련기사: [단독]김승원, 식약처 로비 전 '영장기각' 판사 만남서 브로커에 전화)
세 사람의 인연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김 후보자는 제넨셀의 임상시험 승인을 둘러싼 로비가 진행 중이던 2021년 10월 14일 양씨와 통화하면서 정 판사를 만나러 가고 있다고 말했고, 양씨도 합석 의사를 밝혔다.
이후 2022년 2월에는 김 후보자와 정 판사, 양씨가 여의도에서 함께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해당 사진에서 양씨는 "같이 운동하며 만나뵌 정 판사님. 다이어트로 좋아진 체력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생긴다"라는 글도 남겼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기 최소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들의 친분은 여전히 유지돼온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정 판사의 영장심사 과정 전반을 투명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영장은 수사 진행 상황과 구체적인 혐의 등 민감한 정보가 많이 담겨 있어서 밀행성이 요구되는 수사의 특성상 심사 과정은 매우 엄격하게 통제돼야 한다"며 "주요 피의자들과 사적 친분이 있는 정 판사가 영장전담 기간 동안 해당 인물들과 접촉이 전혀 없었는지 규명돼야 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앞서 정 판사는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공보관을 통해 "현재 별도로 밝힐 입장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