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파병과 관련해 정부가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전략적 모호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지조사단을 중동에 파견하는 등 실무 차원의 준비는 구체화하는 모습이다. 정부의 고민도 이제 '파병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넘어 '어떤 명분과 틀로 보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병' 단어에도 조심스러운 靑…실무 준비는 속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호르무즈 파병 문제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지만 정해진 것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우리가 실질적으로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의견을 교환하는 정도였지, 새로운 진전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파병'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에도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9일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 출연해 "항행의 자유를 위해 기여한다는 말을 곧바로 파병이란 말과 등치해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 "비전투든 전투든, 1명이든 2명이든 현장에 가게 되면 그건 파병이라고 규정이 된다(지난 4일,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설명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선을 긋고 있지만 실무선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우리 군은 지난 주말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정세와 안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UAE)에 현지조사단을 파견했다. 국방부는 "이번 조사가 파병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실제 파병 가능성을 염두에 둔 실무 검토가 진행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P-8A 해상초계기와 폭발물처리반(EOD) 등 구체적인 전력 운용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미국이 중간선거가 열리는 11월까지 한국의 기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간표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국회 파병 비준동의안 제출 및 처리 일정과 군 자산의 현지 이동 시간 등을 감안하면 이달 중에는 정부 방침을 공식화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 파병까진 첩첩산중…'국제 공조' 명분쌓기 주력
문제는 파병에 따른 군사적 위험이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 미군과 이란군 간 무력 공방이 다시 격화하면서 한국군이 현지에 투입될 경우 직접적인 교전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란의 반발이나 보복 가능성도 부담이다. 국내적으로는 국회 비준동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되고, 파병에 대한 여론의 반발도 정부가 넘어야 할 변수다.
정부는 미국 주도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모양새를 피하면서도 국제사회와의 공조라는 명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항행의 자유와 해상교통로 안전을 위한 국제 공조'라는 틀을 만드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치고 "대한민국과 프랑스는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항행의 자유와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이 조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긴밀한 공조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대미 투자가 본격화하면 미국의 파병 압박도 다소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투자와 파병 문제를 별개의 사안으로 규정했다. 이 관계자는 "투자와 파병이 연결돼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파병 검토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 투자와 연결해서 속도를 늦추거나 당기거나 하는 고려는 없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귀국 후 현지조사단의 보고와 주요국과의 협의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7일로 예정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파병 안건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