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읽기와 쓰기의 조건을 바꾸는 시대, 문학은 다시 '사람'을 묻는다.
한국문학번역원은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축제 주제와 주요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간담회에는 개막 대담에 나서는 소설가 김애란과 칠레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 기획위원인 소설가 김연수와 시인 서효인이 참석했다.
올해 서울국제작가축제는 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주제는 '누구세요?(Who are we?)'다. 타인을 향한 일상적 질문을 인간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되묻는 질문으로 확장해, AI와 비인간 존재가 화두가 된 시대에 사람다움의 가치와 문학의 역할을 살피겠다는 취지다.
개막 대담은 11일 오후 6시 30분 아라아트센터 3층에서 열린다. 김애란과 라바투트가 '사람입니다'를 소주제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의 문학이 사람의 존재와 정체성을 어떻게 담아내는지 이야기한다.
김애란은 간담회에서 최근 여러 문학행사에서 AI 관련 주제가 이어진 데 대해 "피로감을 주면 어쩌나 하는 개인적 걱정도 있었다"면서도 "AI 환경이 언어 모델을 넘어 읽고 쓰기의 기본적인 관계를 변화시키고 있어 작가로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축제 주제인 '누구세요?'에 대해 "문학이 오랫동안 해온 질문 중 하나"라며 "작은 세부 꼭지들이 '무엇무엇 하는 사람'이라는 동사로 이뤄진 것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어 "축제 기간 다른 작가들의 고민을 경청하면서 배우는 자리로 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라바투트는 '누구세요?'라는 질문을 "인문학의 근본적인 측면을 짚는 질문"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부분을 계속 상상하고 이어나가는 것이 인간의 상상력을 추동한다"며 "작가들은 우리가 가장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을 말과 글로 온전히 끝내지 못한다는 역설을 마주한다"고 말했다.
AI에 대한 우려도 간담회의 주요 화두였다. 라바투트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의 미래로 나아가고 있지만, 준비돼 있지 않다"며 "돈과 기술의 융합이 인간을 비인간적인 상황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은 AI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며 "문학은 시스템 밖에 존재하고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김연수는 올해 축제의 기획 의도를 설명하며 "AI를 통해서도 내가 누구인지, 타인이 누구인지, 이 세계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축제는 AI를 배제한다기보다 원래 문학의 방법론으로 돌아가 나와 타인, 세계가 무엇인지 살펴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AI가 답을 내놓는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연수는 "AI가 빨리 발전하고 있고 과정 없이 답을 내놓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 중간 과정을 견디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을 아느냐보다 어떻게 알게 됐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결과만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라며 이를 "종교적 맹신과 비슷하다"고 했다.
김애란은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문학의 작동 방식을 다시 보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AI 번역과 실시간 번역 기능을 예로 들며 "처음에는 소통을 더 빠르고 깊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갈등과 혐오에도 기여하는 바가 있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문학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소통에 대한 환상을 주지 않는 것"이라며 "언어가 빨리 교환된다고 해서 소통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개막 대담에서 다룰 '사람'의 의미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어졌다. 김애란은 "사람 혹은 인간이라는 말은 넓게 비춰볼 수 있다"며 "인간성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면도 있고, 끔찍하고 지긋지긋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을 설명하는 단서로 "희생, 헌신, 배려라는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들며 "그 육체를 찢고 나오는 아름다운 비효율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라바투트는 축제의 영어 주제 'Who are we?'와 관련해 '몸'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인간에게 몸이 있기 때문에 피로와 허기, 욕망을 느끼고, 그 경험이 인간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완전히 알 수 없는 인간 경험의 미스터리야말로 예술이 가능한 지점"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올해 축제에는 국내 작가 14명과 해외 작가 10명 등 모두 24명이 참여한다. 김애란과 라바투트를 비롯해 데이먼 갤것, 히라노 게이치로, 실비아 모레노 가르시아, 울리아나 볼프,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천쉐, 존 랭건, 에밀리 정민 윤, 저우 젠신 등이 독자와 만난다. 국내에서는 강민영, 김멜라, 김효은, 문지혁, 박건웅, 신이인, 안보윤, 예소연, 이승우, 이희주, 정용준, 최재원, 황정은 등이 참여한다.
작가 대담, 작가와 번역가 대담, 관객 참여형 워크숍 등 20여 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행사는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열리며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다. 사전 예약은 공식 홈페이지와 네이버 예약을 통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