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이행을 둘러싸고 한미 간 온도차가 커지면서, 투자 문제가 통상·안보를 아우르는 동맹 현안으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현지시간) 한국 정부가 미국과 3500억달러(약 47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에 합의한 지 1년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자금 집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미국 내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한국 정부가 대미 투자와 관련해 사업 타당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짚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기업들이 경제성이 없는 사업에 투자할 리 없으니 정부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조속한 성과를 원하고 있어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지난해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 대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도 영향을 미쳤다고 FT는 지적했다. 미 이민당국의 단속이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를 주저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세계 2위 수준의 건조량을 자랑하는 한국 조선업의 기술력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조선업 부흥 정책과 맞물려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협상 카드로 꼽힌다고 FT는 전했다.
미국의 압박 수위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투자 이행이 지연될 경우 미국 정부가 한국이 합의 이행을 회피하려 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대미 투자 유치를 주요 성과로 내세울 필요가 있어 한국에 대한 압박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미국 소식통들은 FT에 "한국 정부가 속도를 내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전쟁에 대한 한국의 지원 부족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배경에도 투자 지연에 대한 불만이 작용했다"고 전했다.
FT는 한국의 대미 투자 문제가 한미 관계의 다른 안보 현안과도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 축소 지시 등을 사례로 언급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라몬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미국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확보 계획을 지원하기로 한 합의를 번복하거나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다시 꺼내 들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한미 동맹의 기틀은 튼튼하지만, 동맹을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 때문에 그의 재임 기간 한미 관계는 불안정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