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초고수' 난민 러너 김창원, 기자가 따라갈 수 있을까?[페이스메이커]

[러닝 고수를 찾아서…'난민 러너' 김창원①]

창원스포츠파크보조경기장에서 만난 김창원 고수. 이우섭 기자

'10㎞ 31분대, 하프 1시간 7분대, 풀 2시간 18분대'

200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열렸던 국제 마라톤 무대를 그야말로 '휩쓸었던' 일반인이 있다. 바로 부룬디 출신 버징고 도나티엔이다.

도나티엔은 2010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이제는 '김창원'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한국의 각종 마라톤 대회를 평정했다. 이제 50대에 들어선 김창원 고수(高手)는 현재 재직 중인 회사 마라톤 동호회 에이스로 활약하며, 동호회원들의 기록 향상을 돕고 있다.

폭염의 기세가 한풀 꺾인 8월 말, 경상남도 창원스포츠파크보조경기장에서 김 고수를 만났다. 몸을 풀던 김 고수는 '현대위아'라는 글자가 새겨진 싱글렛을 꺼내 입으며 빙긋 웃었다.

현대위아 마라톤 동호회는 발군의 기량을 지닌 실력자들이 많은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1999년 모기업 부도 당시 분위기 쇄신을 위해 임직원들이 함께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 출발점이다. 회원의 ⅔ 이상이 서브3(풀코스 3시간 이내 완주) 주자라는 얘기도 나온 적 있을 정도다.

그 중심에는 단연 김 고수가 있다. 단순히 함께 뛰는 것을 넘어 체계적인 훈련을 주도한다.

한국 마스터즈 마라톤계의 전설, 김 고수를 '페이스메이커'가 따라갈 수 있을까.

이 기사는 기자가 직접 달리며 작성했습니다.

10㎞를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다. 초반 1㎞ 페이스는 5분 17초.

김 고수가 먼저 기자에게 어느 정도 속도가 편한지 물었다. 평소 평균 페이스를 4분 20초 안팎으로 잡고 뛰기 때문에, 기자에게는 여유 있는 속도였다. 심박수도 149BPM에 그쳤다.

"빠르게 뛰시네요. 저는 초반에는 천천히 뛰는 편이에요. 서서히 속도를 올리죠. 몸이 풀리면 조금씩 조금씩 페이스를 올립니다."

2㎞ 페이스도 5분 05초.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평소 현대위아 마라톤 클럽 훈련 전 조깅 페이스도 이와 비슷하다고 했다.

"마라톤 뛰는 사람들에게 서브3는 희망 사항이잖아요. 서브3 달성에 도움 될 수 있는 것들은 회원들에게 최대한 알려주려고 해요. 물론 시간은 필요해요. 그래도 끝까지 포기만 안 하면 누구나 서브3는 할 수 있어요."

몸이 풀린 김 고수는 서서히 속도를 끌어올렸다. 3㎞ 지점부터는 4분대 페이스로 진입했다. 기자의 심박수는 164BPM으로 높아졌다.

반면 김 고수는 평온했다. 달리다가 자신의 스마트 워치를 보여줬는데, 140BPM에 불과했다.

2010년 '아디다스 MBC 한강 마라톤' 당시 김창원 고수가 결승선 통과를 앞두고 있다. 경남대 제공

속도는 점점 빨라졌지만, 대화는 계속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언제였을까. 김 고수는 망설임 없이 2010년 경기도 하남시에서 열린 '아디다스 MBC 한강 마라톤'을 꼽았다. 당시에는 귀화 전 '도나티엔'이라는 이름으로 대회에 나섰다. 기록은 2시간 28분 26초.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 대회는 유독 해외 선수들이 많이 참가했어요. 특히 2등을 했던 호주 선수가 생각나요. 그 선수와 끝까지 우승 경쟁을 했죠. 우승은 했지만 정말 힘들게 우승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격차가 거의 안 났어요."

김 고수는 한국 마스터즈 마라톤의 역사를 쓴 인물이다. 굵직한 대회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동아마라톤대회'에서 3년 연속 1위를 거머쥐었다. 특히 2007년에는 국내 마스터즈 역사상 최초로 풀코스 2시간 20분대의 벽을 허물었다. 2시간 18분 39초로 역사를 세웠다.

"옛날에는 스마트워치도 없었잖아요. 지금이야 페이스를 보면서 조절하며 뛸 수 있죠. 그때도 시계가 있기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기능이 좋지는 않았죠. 그래서 그냥 뛰다 보니까 2시간 18분대가 나오더라고요. 근데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때도 현대위아 분들이 같이 뛰었는데 도움을 받아서 좋은 기록이 남은 것 같아요."

지난 2024년 철원DMZ국제평화마라톤에 출전한 모습. 김창원 고수 제공

과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밝았던 하늘도 어둑어둑해졌다. 갈수록 속도는 빨라졌다.

4㎞ 4분 47초, 5㎞ 4분 39초, 6㎞ 4분 36초, 7㎞ 4분 34초, 8㎞ 4분 29초.

시간이 지나면서 트랙을 뛰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김 고수에 따르면 창원에도 퇴근 후 러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선배 마라토너로서 반가운 현상이라며 흐뭇한 미소도 지었다. 인터뷰 중인 김 고수를 페이스메이커 삼아 따라 뛰는 몇몇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뛰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건강을 위해서 뛰고, 어떤 사람은 재미를 위해서 뛰죠. 보기가 좋아요. 제가 주로 대회에 나갈 때만 해도 대회 접수는 널널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10분 만에 마감되더라고요. 인기를 체감하고 있어요."

2016년 부산~서울간대역전경주대회 당시 경남 대표로 달리고 있는 김창원 고수. 대한육상연맹 제공

8㎞ 지점부터 10㎞까지는 더욱 속도를 끌어올렸다. 김 고수에게 일부러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속도 올려야 운동이 되죠. 가끔씩은 마지막에 스프린트도 해요. 평소에는 속도를 많이 올리지는 않아요."

9㎞ 페이스 4분 18초, 10㎞ 페이스 4분 13초가 찍혔다. 남은 거리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3분 53초 페이스까지 올리며 총 10.15㎞를 완주했다.

"기자님 뛰는 모습 보니까 아주 멋있습니다. 진짜로 정말 대단하십니다. 페이스 조절 못 하면 1㎞, 1㎞가 힘들어요. 장거리는 마지막에 밀어붙일 수 있게 힘을 남겨두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혼자 뛰는 것보다 누가 옆에 있으면 좋아요. 뛰는 게 힘들더라도 같이 뛰면 뛰게 돼요."

인터뷰를 마친 김창원 고수. 이우섭 기자

인터뷰 내내 김 고수가 유독 강조한 말이 있다. '같이 뛰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2000년대 국내 마라톤 대회를 풍미했던 김 고수는 이제 기록, 성적에 대한 욕심을 조금은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대신 함께 달리는 것 자체에서 행복과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동호회에서도 빠르게 달리는 법을 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끝까지 달릴 수 있도록 옆에서 이끌어 준다.

"뛰는 게 힘들더라도 같이 뛰면 뛰게 돼요."

기록은 혼자 만들 수 있지만, 달리는 즐거움은 함께 나눌 수 있다. 어쩌면 이 한마디에 김 고수가 지금 달리고 있는 이유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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