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엔하이픈(ENHYPEN)은 지난해 8월 '이머전'(IMMERSION)이라는 이름의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콘서트 영화로 팬들을 만났다. 끊임없이 바뀌는 장소에서 화려한 무대를 펼치는 엔하이픈은 마치 0㎝ 앞에 있는 것처럼 관객과의 거리를 좁혔고, 그 어마어마한 '몰입감'은 'VR 콘서트'를 입소문나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머전'은 누적 관객 수 2만 9천 22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패러다임이 변할 때 큰 기회가 생긴다'라고 믿었고, TV 모니터와 안경 등 XR(eXtended Reality, 확장현실) 장비가 시장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음악을 낼 때마다 그 곡에 맞는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이 '기본'이 된 것처럼, 아티스트와 곡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콘서트를 만들고 싶었다. 2026년 현재, 하나하나 그 목표를 실현해 가는 중이다.
한국대중음악산업협회는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큐브컨벤션센터에서 '2026 MWM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연사로 나선 이승준 어메이즈 CEO 겸 공동 창업자(이하 '대표')는 'VR 콘텐츠: 기술을 통해 코어 팬덤을 만드는 방법'이란 주제로 지금까지 제작·공개한 VR 콘서트를 소개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어메이즈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VR로 만들어 전 세계 극장과 XR 헤드셋에 유통하는 회사로, 지난 2022년 메간 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을 주인공으로 세계 최초의 상업 VR 콘서트 극장 투어를 시작했다.
미국 현지에서 시작한 사업이 K팝과 만난 시점은 지난 2023년 그룹 에스파(aespa)를 통해서다. 이후 엑소(EXO) 카이,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차은우, 엔하이픈, 에이티즈(ATEEZ), 르세라핌(LE SSERAFIM), 앤팀(&TEAM)의 VR 콘서트 영화가 나왔고, 지난해 6월부터는 두 달에 한 편씩 신작을 공개하는 중이다.
VR 콘서트를 떠올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이 대표는 세계적인 팝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단독 콘서트의 좋은 좌석은 천만 원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티켓 거래 사이트 화면을 보여준 후, 라이브 콘서트 산업의 시장 가치가 60조 원에 달한다고 우선 말했다.
"내년에 브루노 마스(Bruno Mars)가 온다고 하는데, (모든) 톱 아티스트를 서울에서 보기 어렵지 않나. 전 세계적으로도 (보고 싶은 가수의 라이브 콘서트를) 못 보는 팬들이 많다고 생각한다"라고 한 이 대표는 "라이브 콘서트는 뒤에서 보면 별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환경에서 공연보는) 경험을 대중화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VR 콘서트는 관객과 아티스트가 '초밀착'되어 있다는 것이 특장점이다. VR 콘서트 후기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반응이 '내가 이렇게 가까이에서 아티스트를 봐도 되나?'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VR 콘서트의 수요층을 "라이브네이션(국내외 콘서트 프로모션과 티케팅 등을 주 사업으로 하는 미국 기업) 스포티파이의 중간 정도"로 바라본 이 대표는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라며 "완전히 다른 경험"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다채로운 시도를 바탕으로 개성 있는 무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이 대표는 "코첼라나 슈퍼볼 하프타임급 프로덕션으로, 현실 무대에서는 불가능한 연출까지 더해 구현한다"라며 "자기 음악에 가장 잘 맞는 프로덕션을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한다"라고 설명했다.
요즘 뮤직비디오의 조회수가 떨어지고 숏폼(짧은 동영상) 조회수가 높아지는 것처럼 스낵 콘텐츠로 수요가 쏠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반대급부로 "엄청 리치한 콘텐츠는 잘될 것"이라고 이 대표는 진단했다. 그러면서 VR 콘서트가 "아티스트가 내 음악을 제일 잘 표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지금 나오는 콘텐츠의 완성도도 충분히 높지만 "더 좋은 것"을 만들 수 있게 팀에 계속 푸시하고 있으며, 1년에 쓰는 100억 원 중 대부분이 연구개발(R&D)비로 쓰인다는 게 이 대표 설명이다. 그는 "하루이틀 촬영으로 투어 없이 전 세계 팬들에게 VR 콘서트를 유통할 수 있다"라며 "마치 (지금의) 음원처럼 아티스트 공연을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8개국 70개 이상의 도시에서 VR 콘서트를 상영해 100만 장 이상의 표를 팔았고, 매출의 약 90%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극장에 공급하는 VR 헤드셋은 3300대를 돌파했고, 누적 투자 유치액은 약 760억에 이른다고 어메이즈는 밝혔다.
완성본 형태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VR 콘서트도 가능한지 질문에 이 대표는 "당연히 가능한데 그 정도 화질의 라이브를 하려면 되게 많은 인터넷이 필요하다. (시청에 필요한) 헤드셋이 많지 않아서 볼 사람이 적어 사업적으로는 힘들다. 키워드로 볼 때는 아주 섹시하지만 유저 가치가 부족해 지금은 어렵다"라고 답했다.
대규모 팬덤을 보유한 아이돌 그룹이 아닌 인디 뮤지션이나 신인으로도 VR 콘서트를 만들 수 있을까. 이 대표는 "제 지향점이다. 미국 레이블과 얘기하다 보면 (그쪽에서) 신인 리스트를 보여준다. 그중 어떤 사람이 슈퍼스타가 되기도 한다. 밀 만한 신인 아티스트로 다 VR 콘텐츠를 만드는 게 목표인데, 제작 비용은 많이 줄여야 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지금은 VR 콘서트를 시청할 수 있게 헤드셋을 영화관에 빌려주는 방식이어서 어느 정도 모객이 되는 '큰 아티스트'가 중심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이 대표는 "아예 (VR 콘서트) 전용관을 쭉 깔고 싶다. 그러면 작은 아티스트(로)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