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경상우도 수군을 총괄하던 최고 지휘부인 '경상우수영'의 최초 본영이 거제 가배량진성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고 군사 기지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국가사적 승격 추진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경남연구원은 '경상우수영의 뿌리, 남해안 방어의 핵심기지 가배량진성의 역사적 위상 복원'이라는 주제로 정책브리프를 12일 내놨다.
수군절도사 지휘하던 최고 위계 성곽…185년간 남해안 방어
가배량진성은 지금까지 주로 조선 후기 수군 만호(종4품)가 거주하던 '가배량진'으로만 알려져 왔다. 그러나 문헌 기록과 최근 발굴 조사 결과, 이 성곽의 물리적 실체는 조선 전기 수군절도사(종2품)가 상주하며 남해안 수군을 총괄했던 경상우수영 본영 성곽인 것으로 나타났다.경상우수영은 태종 3년(1403년) 웅천 내이포에서 시작해 여러 곳을 거친 뒤, 세종 7년(1425년) 병선 정박과 풍랑을 피하기 좋은 거제 오아포(현 가배량)로 이전했다. 오아포는 풍랑을 피하기 쉽고, 주요 해상로를 감시하기에 유리한 군자적 요충지다. 이후 성종 19년(1488년)에 대규모 석성이 축조됐다.
이곳은 조선 전기부터 선조 37년(1604년) 통영 두룡포로 수영이 공식 이전하기 전까지 약 185년 동안 경상우도 수군의 핵심 지휘 거점으로 작동했다. 당시 오아포의 경상우도 수군은 병선 28척과 군사 2601명을 거느린 대규모 진영으로, 조선 전기 남해안 수군 방어를 지휘하는 중심지였다.
수영 이전 후 고성에 있던 가배량진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가배량진성'이라는 명칭이 후대에 정착됐다.
둘레 1.5km 대규모 성곽…조선 전·후기 수군 중첩 방어 구조
발굴 조사에 따르면, 가배량진성은 전체 둘레 약 1574m, 성벽 높이 3~4m에 달하는 대형 성곽이다. 성곽 전 구간에는 7기의 치성과 4개의 성문, 망루, 해자 등 촘촘한 중첩 방어 구조를 갖추고 있다.이는 단순한 지역 방어용 진성을 뛰어넘어 최고 지휘부 본영의 위계에 들어맞는 규모다. 최근 발굴된 치성 상부에서는 망루 기저부가 확인되기도 했다.
이번 연구는 가배량진성이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선상수어(배 위에서 방어)' 체제에서 성곽 중심의 육상 방어 체제로 전환되는 조선 수군 전략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증명하는 기준 유적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가 크다.
특히 한 공간에 조선 전기의 '수군 본영'과 조선 후기의 '만호진'이라는 두 가지 군사적 성격이 중첩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경남연구원 이재명 조사연구위원은 "가배량진성은 약 470년에 걸쳐 남해안 수군 방어의 핵심 거점으로 기능한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며 "역사적 성격을 반영한 재평가와 함께 국가사적 승격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