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전력 위해 또 송전탑?…'지산지소' 정부의 딜레마

호남 전력 수도권 보내려 충남에 345㎸ 송전망 10개 노선 추진
AI·반도체 전력수요·재생에너지 확대에 송전망 확충 불가피
"지역 희생 되풀이" 주민 반발…지중화·주민 수용성 확보 관건


정부가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를 일치시키는 '지산지소형 전력 시스템'과 송전망 지중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호남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장거리 송전망 건설이 추진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와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동시에 급증하면서 송전망 확충을 더는 미루기 어려운 정부로서는 장거리 송전에 따른 지역 갈등과 주민 수용성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과제로 떠올랐다.

13일 기후에너지환경부 등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는 호남권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 첨단산업단지로 공급하기 위해 충청권을 지나는 345㎸급 송전망 확충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호남과 수도권을 잇는 대용량 송전선로는 2개에 불과하다. 수도권의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증설 등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려면 추가 송전망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와 한전의 판단이다.

호남과 수도권의 중간에 위치한 충남을 지나는 송전선로 사업만 10개 노선에 이른다. 신계룡~신정읍·북천안·신임실, 새만금~신서산·청양, 북천안~신기흥, 군산~북천안, 신탕정~신판교, 신중부~신용인, 청양~고덕 등이다.

정부가 송전망 확충을 서두르는 배경에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가 있다. 3대 메가프로젝트에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 데다,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이행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대폭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위원회는 3대 메가프로젝트에 필요한 연간 전력 사용량을 약 260테라와트시(TWh)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총발전량의 40%를 웃도는 규모다.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도 2030년 100기가와트(GW), 2035년 163GW, 2040년 220GW로 제시했다. 발전시설을 늘리더라도 생산한 전력을 수요처까지 보낼 송전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제 공급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송전망 건설 속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 정비에도 나섰다. 지난달 국회에서는 민간사업자의 송전망 건설 참여를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한 이른바 '전력망 3법'이 처리됐다.

문제는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의 반발이다. 충청남도 송전탑 백지화 대책위원회는 지난 10일 입장문을 내고 "수도권 규제를 풀어 용인에 반도체 국가산단을 지정하고, 필요한 전기를 호남의 재생에너지에서 생산해 보내겠다고 하니 광주·전남과 전북, 대전, 충남, 세종, 충북, 경기 모두가 피해지역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수도권의 전력 수요를 수도권에서 최대한 충당하는 '지산지소'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수도권에서 재생에너지를 자체적으로 확보해 전력을 공급한다면 충남에 새로운 송전철탑이 건설될 필요가 없다"며 "석탄화력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에 보내기 위해 수많은 송전선로가 세워졌음에도 충남의 지중화율은 1%대로 전국 최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내세운 전력 정책과 실제 송전망 확충 계획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형 전력 시스템'을 국정 방향으로 제시하고 산업용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신규 송전선로의 지중화와 최소화도 강조하고 있으며 내년도 예산안에는 전력망 지중화 사업에 27억 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당장 수도권의 대규모 전력 수요를 충당하려면 호남 등 비수도권에서 생산한 전력을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끌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역 내 생산·소비 체제로 전환하면서 동시에 장거리 송전망도 확대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 셈이다.

과거 송전망 건설 과정에서 반복된 지역 갈등도 부담이다. 2005년 시작된 밀양 송전탑 갈등 이후 송전망 건설이 잇따라 지연된 전례가 있는 만큼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부의 전력망 확충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CBS노컷뉴스에 "송전선로 시작점과 끝점이 정해진 다음에야 주민들이 입지선정위원회에 참여하게 되는 구조라 사실상 사전 동의가 없는 상태"라며 "독일 같은 경우 송전선로 지중화를 기본 원칙으로까지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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