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드러난 대미 에너지투자…'수익·일감' 얼마나 챙기나

가스발전 30조·원전 최대 8기 거론…김정관 방미해 막판 조율
AI 전력 수요에 장기 수익 기대…공사비 증가·수익 배분은 변수
'한국 업체 우선' 실제 수주가 관건…APR1400 채택 여부도 쟁점
이르면 17일 국회 보고…첫 사업 조건이 후속 전략투자 가늠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열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부부 주최 공식 환영 만찬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대미투자가 가스발전소와 원전 등 '에너지 인프라'를 중심으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인공지능(AI) 산업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투자 수익을 확보하는 동시에 국내 기업의 일감까지 만들어내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대규모 사업인 만큼 공사비와 투자금 회수 구조, 한국 기업의 참여 조건을 얼마나 유리하게 구체화하느냐가 성과를 좌우할 전망이다.

김정관, 최종 조율 위해 방미…가스발전 30조·원전 8기 거론

12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프랑스 국빈 방문 동행 일정을 마친 직후 미국으로 향했다. 김 장관은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미 투자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최종 사인하기 전까지 협상은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며 구체적인 투자 조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한국이 약속한 대미투자는 총 3500억달러로, 전략투자 2천억달러와 조선협력 1500억달러로 나뉜다. 현재 논의 중인 발전소와 원전 등은 전략투자 부문에 해당한다.

첫 사업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다. 약 6.3기가와트(GW) 규모의 발전시설을 지어 AI 데이터센터 등에 전력을 공급하는 구상이다. 총사업비는 223억달러(약 30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1단계로 1.4GW 규모의 가스터빈 발전시설을 개발한 뒤 4.9GW 규모의 복합화력 설비를 추가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다만 총사업비가 곧 한국의 투자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기금 투입액은 한국의 지분율과 프로젝트 차입 규모, 미국 측 출자 구조 등에 따라 달라진다.

후속 사업으로는 미국 내 대형 원전 최대 8기 건설이 논의되고 있다. 미국이 전략투자금 가운데 1200억달러를 원전 건설에 활용하자는 구상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개별 사업의 부지와 노형, 투자 규모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도 협의 대상으로 거론된다.

외신도 합의가 가까워졌다는 관측을 내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한국이 원전 최대 8기와 가스발전 사업 등을 포함한 1천억달러 이상의 에너지 투자 계획 발표를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는 구체적인 투자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기존 약속을 초과하는 투자를 요구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산업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전략투자 총액 2천억달러와 연간 송금 한도 200억달러라는 기존 합의가 유지된다는 설명이다.

텍사스 애빌린의 오픈AI 데이터센터. 연합뉴스

AI 전력 수요가 투자 기반…장기 판매계약이 관건

에너지 인프라가 주요 투자 대상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미국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가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시설이 늘면서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발전시설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이런 수요를 장기적인 전력판매 수입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 투자 유인이다. 데이터센터 운영기업 등과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맺으면 판매처를 확보하고 향후 현금흐름의 예측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이는 지난해 한미가 투자 양해각서(MOU)에 담은 '상업적 합리성' 원칙과도 맞닿아 있다. 투자 사업에서 한국에 돌아올 예상 수입으로 투자 원금과 이자를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상환 이자율은 미국 국채 20년물 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산정한다.

엔시날 사업에서도 장기 전력판매 등을 바탕으로 연 5%를 웃도는 투자수익률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확정되거나 보장된 수익률은 아니다. 실제 투자금 회수 가능성은 발전소 자체의 수익성과 함께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에 따라 달라진다.

30조 사업비 더 늘 수도…수익 배분 구조도 변수

장기 수익 전망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에 달려 있다. 전력을 구매하는 기업의 지급 능력과 구매 가격·기간, 가스 가격 상승분을 전력 판매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지가 수익성을 좌우한다. 데이터센터 가동이 늦어져도 최소 구매물량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건설 단계에서는 인허가와 공사 지연, 공사비 상승 위험이 있다. 엔시날 사업비는 협의 과정에서 당초 198억달러에서 223억달러로 약 12.6%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시설이 반영된 것인지, 기존 설비의 건설 단가가 오른 것인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추가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도 확인해야 한다.

사업에서 발생한 수익을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 회수하느냐도 핵심 쟁점이다. 지난해 정부는 여러 프로젝트의 수익을 모아 한국의 투자 원리금 상환에 활용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특정 사업의 수익이 부족하더라도 다른 사업의 성과로 보완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당시 설명한 수익 배분비율은 원리금 상환 전에는 한국과 미국이 5대5, 상환 이후에는 1대9였다. 20년 내 전체 원리금 상환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면 배분비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에는 미국이 프로젝트별 손익 배분을 요구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산업부는 "수익 배분 구조는 한미 간 협의 중이며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업별로 정산해 수익이 좋은 사업의 미국 몫이 먼저 확대된다면 해당 수익을 다른 사업의 투자금 회수에 활용할 여지는 줄어든다. 최종 합의에서 배분비율 전환 기준과 원리금 회수가 부족할 경우의 보완 장치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 업체 우선' 실제 수주로 이어질까…APR1400도 쟁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인근 뉴어크 공항에 도착,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투자 수익과 함께 따져야 할 실익은 국내 기업의 수주다. 지난해 MOU에는 상품·서비스 공급업체 선정 때 한국 업체를 우선하도록 했지만 실제 수주 물량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발전소 설계·조달·시공과 기자재 공급에서 한국 기업의 참여 범위와 계약 규모를 구체화해야 한다. 대기업뿐 아니라 국내 중소·중견 협력업체의 납품 기회로 이어지는지도 관건이다.

특히 원전에서는 노형 선택이 국내 기업의 참여 범위와 직결된다. 미국 측은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려는 반면 한국은 한국형 원전 APR1400을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최대 8기 가운데 2기에 APR1400을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은 AP1000을, 우리는 APR1400을 고수하면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 측은 협상 과정에서 관세 부담을 낮추는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해 한국형 원전 채택만을 고수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APR1400이 채택되면 한국 기업이 설계와 주요 기자재 공급, 시공 등에서 참여 범위를 넓힐 여지가 생긴다. 미국에서 한국형 원전을 건설한 실적을 확보한다면 다른 국가의 후속 원전 수주에서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물론 AP1000 사업에서도 한국 기업의 시공·기자재 공급 참여는 가능하다. 결국 노형 자체뿐 아니라 국내 기업이 어떤 공정을 맡고 어느 정도의 계약을 확보하는지까지 따져봐야 한다.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 방안도 거론되지만 산업부는 "원전 투자 협력을 위한 다양한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구체적인 사항은 정해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르면 17일 국회 보고…1호 사업이 후속 투자 '가늠자'

향후 일정으로는 김 장관 귀국 후 이르면 17일쯤 국회 보고를 거쳐 18일 관련 합의문에 서명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산업부는 구체적인 발표 시점과 첫 송금 규모·시기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첫 합의가 성사되더라도 원전과 LNG 등 후속 사업은 각각 경제성 검증을 거쳐야 한다. 원전은 부지 확보와 인허가, 장기간의 건설 일정이 투자금 회수 시점을 좌우한다. LNG 사업도 장기 수요처 확보와 가스관 등 선행시설의 투자 부담을 따져야 한다.

한국의 실제 자금 부담도 확인해야 한다. 투자 한도와 별개로 직접 출자액이 얼마인지, 보증이나 추가 출자 의무가 있는지, 공사비 초과분과 사업 실패에 따른 손실을 누가 부담하는지가 중요하다.

MOU에 담긴 '외환시장 불안 시 납입 시기·규모 조정 요청권'의 적용 기준과 협의 절차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결국 1호 프로젝트에서 정해질 수익·위험 분담 조건과 국내 기업 참여 방식이 향후 대미 전략투자의 기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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