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해치는 '호르무즈 파병 기정사실화'

[기자수첩]
정부 잇단 부인에도 '답정너'식 보도 봇물…구체적 숫자·방식까지 거론
정부 협상력 약화 우려…집 매입 결정하기도 전에 이사 계획 세우는 격
야당 의원들도 "3월에 파병 요구 응했어야"…한미관계 고리삼아 정부 비판
대외적 '한 목소리' 중요…고난도 고차방정식 앞에서 모두의 신중한 자세 필요

연합뉴스

한 국내 언론은 지난 3일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 군 자산과 병력을 파병하기로 하고 조만간 파병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위해 내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등의 파견을 유력 검토하고 있고 이르면 한두 달 안에 파병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이에 청와대는 해당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관련된 사안은 결정된 바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다음날에는 다른 언론이 해상초계기 파견 등 비슷한 내용을 재차 보도했다. 이 보도는 구체적 병력 규모와 무기체계도 이미 결정했고 다만 작전기지 정도만 정해지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이쯤 되자 정부의 잇단 부인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파병을 기정사실화하는 보도가 경쟁적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 10일과 11일에는 미국 주도의 해양자유연합(MFC) 일원으로 파병하는 것을 우선 검토하고 있다거나 합참 본부장이 파병 점검차 이달 말 청해부대를 방문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물론 정부는 해당 보도에 대해서도 각각 부인했다. 특히 합참 본부장의 청해부대 방문은 해외파병부대 현장점검을 위한 연례적 출장이었지만 불필요한 오해 방지 차원에서 연기됐다. 
 
호르무즈 파병은 중차대한 문제인 만큼 언론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너무 앞서나가는 보도로 정부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는 것은 국익에 반한다. 정부가 '검토'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결국은 파병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강화되면서 정부의 협상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설령 정부가 결과적으로는 파병을 결정하더라도, 이런 식의 기정사실화는 미국으로부터 파병에 따른 반대급부를 얻어내기 힘들게 만든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호르무즈 현지 조사단이 지난 10일 귀국해 이제 겨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고 절차를 밟는 단계인데 세부적 파병안까지 언급되는 현실이다.
 
원칙적으로 보면 현지 조사단 파견이 곧 파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집 매입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위해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꼭 그 집을 사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매입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도 있다. 최근 일부 언론 행태는 집을 사기로 결정하기도 전에 이사 계획을 세우는 격이다.  
 
파병 문제를 국익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답은 이미 정해졌다'는 식의 한발 앞선 전망보다, 일본과 호주 등은 미국의 똑 같은 파병 요구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왜 우리는 그들 나라보다 더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지 등을 따져 묻는 게 더 건설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지난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파병 요구에 즉각 응하지 않았기에 최근 한미관계가 악화됐다는 일부 야당 의원들의 주장도 보기에 안타깝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우리 정부가 이미 미국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나서 뒤늦게 파병 검토에 착수한 것은 명백한 실기(失機)"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 원내대표의 말은 "파병에는 국회 동의가 필수적"이고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어진 주장과 맞물려 다소 모순적이다.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정쟁은 국경 앞에서 멈춘다"는 초당적 원칙을 지켜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념·당파적 국정 운영으로 많이 퇴색하긴 했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상대적 약소국일수록 대외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난도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지금 정 원내대표의 말처럼 모두의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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