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으로 유럽으로…서진하는 K-방산

현대로템 제공

최근 한국 방산기업들의 유럽 진출 움직임이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유럽진출=동유럽'이던 과거의 한계를 벗어나 방산 선진국으로 인식되는 서유럽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언젠가 넘어야 할 서유럽이라는 '거대한 산맥'에 대한 공략이 현시점에서 본격화 되고 있다.
 

유럽서 맹활약하는 한국 방산기업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31일 스페인 방산업체 인드라시스템즈와 K9 자주포 공급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매출액 2.5% 이상 수주를 공시하도록 한 한국거래소 규정상 계약 규모는 6675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K9 자주포는 지난 2001년 터키를 시작으로 폴란드, 핀란드, 인도,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호주, 이집트, 루마니아 등에 수출돼 왔지만 스페인 수출은 한국 방산업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로 꼽힌다. 방산 선진국으로 불리는 서유럽에 진출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9일에는 크로아티아 국방부와 다연장로켓 '천무' 18대를 6400억원(4억1000만유로)에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크로아티아는 이번 계약으로 한국산 천무를 도입하는 유럽 4번째 국가가 됐다.
 
유럽 전통의 방산기업들과 '전략적 짝짓기'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로사토리 2026'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프랑스 탈레스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탈레스의 이동식 발사대 '엑스파이어(X-FIRE)'에 천무 유도탄을 통합하는 기술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LIG넥스원 계열의 LIG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LIG D&A)도 같은 전시회에서 독일 라인메탈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유럽 내 합작법인(JV) 설립을 통해 첨단 방공시스템을 공동 개발·공급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이 역내 조달을 우대하는 '바이 유러피언' 정책을 가동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완제품 수출을 넘어 현지 기업과의 기술협력·합작을 통해 유럽 방산 공급망에 직접 들어가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국제방위산업전서 유럽 공략 본격화한 한국 방산업체들

국제방위산업전시회 한국 방산 기업 전시관들. SNT·현대로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폴란드 키엘체에서 지난 8일 열린 '제34회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 2026)'에서는 한국 방산업체들의 공격적 마케팅이 불을 뿜었다. 전 세계 43개국에서 1200여개 방산기업이 참가한 이번 전시회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 D&A, SNT다이내믹스·SNT모티브 등 국내 주요 방산기업들이 총출동했다. 한화는 274㎡ 규모 통합 전시관을 꾸리고 K9A2 자주포와 고성능 탄약 패키지, 천무를 앞세워 3차 실행계약(EC3) 타결에 총력을 기울였다. 천무 발사대와 무인수상정(USV)을 결합한 신개념 플랫폼 '스트라이커-S(Striker-S)'로 유럽 해양 방산시장 진출도 모색했다. 한화시스템은 차세대 위성영상 분석 기술인 '우주 AI 솔루션'을 해외에 처음 공개했다.
 
5년 연속 참가한 현대로템은 국내 기업 중 최대 규모 부스를 차리고, 폴란드 현지 소요에 맞춰 개조한 '폴란드형 K2 전차(K2PL)'와 교량전차·구난전차 등 계열 차량을 선보였다. 특히 폴란드 방산업체 오브럼과 공동 개발한 폴란드형 교량전차, 폴란드산 임무장비를 탑재한 K2 전차를 처음 공개하며 현지화 성과를 강조했다.
 
LIG D&A는 천궁-Ⅱ, 장거리 지대공유도무기 L-SAM, 정밀유도폭탄 KGGB를 앞세워 폴란드 다층방공망 사업을 정조준했다. SNT다이내믹스와 SNT모티브는 다목적전술차량 탑재형 120㎜ 박격포체계, K17 기관단총 등 개인화기부터 공용화기까지 아우르는 제품군을 전시하며 나토(NATO) 시장으로의 통합 방산 솔루션 수출을 강조했다.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 패배의 교훈… 넘어야할 '나토'라는 산

한국 방산기업들이 이처럼 유럽 진출에 사활을 거는 배경에는 지난 7월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에서 한화오션이 겪은 패배의 교훈이 자리잡고 있다.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차기 잠수함 사업(CPSP) 수주전에서 한화오션은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와 끝까지 경합했지만 최종 우선협상대상자 자리를 내줘야 했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평가에도 캐나다 정부는 나토 동맹국 간 상호운용성과 공급망 안정성을 최종 선택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비(非)나토 회원국이 나토 회원국과 경쟁에서 장벽에 부딪힐 수 있다는 현실을 국내 방산업계에 각인시켰다. 

국내 방산 기업들은 완제품을 파는 방식에서 벗어나 유럽 현지에 생산기지를 세우고 합작법인을 만들어 나토 공급망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비 증액이 급증하는 기조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 방산업계의 생산능력이 한계에 다다른 현실은 한국 방산업계에 유리한 지점이다.
 
'K-방산'의 유럽 안착 여부는 완제품 수출을 넘어, 폴란드·크로아티아·루마니아 등에서 추진 중인 현지 생산·공동개발과 후속 군수지원(MRO) 체계를 치밀하게 구축해 나토 공급망의 '내부자'로 자리잡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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