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기도는 중언부언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무엇을 달라고 보채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뢸 바를 간단하게 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신학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신앙의 규범을 떠나, 신앙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왜 새벽마다 밤마다 오랜 시간 기도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기나긴 기도의 시간은 바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기도 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해도 한 시간 이상 기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매일 새벽기도에서 그리고 금요기도회마다 몇 시간씩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내가 섬기는 교회공동체를 위해서, 고통당하는 교우와 이웃을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더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이 기도의 일꾼들이 보여주셨던 기도의 본보기였습니다.
제가 30년 전에 사역했던 교회의 한 원로장로님은 가끔 안부 인사를 드릴 때마다 제 아들과 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시면서, "윤서는 잘 있나요?" "리진이는 잘 지냅니까?"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저는 그분과 통화할 때마다 놀라곤 합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를 떠난 다음에 저의 두 아이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고 그 장로님은 그 아이들을 본 적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벽마다 두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장로님은 매일 그 기도를 잊지 않고 이어가시기에 아이들의 이름이 절로 나온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기도의 사람 사무엘은 평생 사역을 마치면서 백성들 앞에서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잘되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일을 그친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삼상 12:23)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사명이자, 우리가 실천하는 가장 귀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름으로 채워질 때, 그 기도는 사랑이 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능력과 기적이 됩니다.
임영섭 목사(경동교회, CBS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