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장중첩증 영아 데리고 300km…의료사막 영양, 소아·산부인과의 '0명'

경북 영양군 내 유일한 응급실인 영양병원 응급실. 곽재화 기자

"최근 생후 5개월 아이가 급성 장중첩증에 걸렸는데 안동에서도 대구에서도 모두 시술을 거부했어요. 심지어 경남 창원까지 갔는데 시술이 실패해 장이 터졌어요. 수소문해서 부산 해운대 백병원까지 가서 겨우 수술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장을 40cm나 잘라냈대요." (지난 11일, 영양군보건소 박은정 진료지원팀장)
 
생후 5개월 아이는 그날 경북 최북단 영양군에서 경남 최남단인 창원시를 거쳐 부산시 해운대까지 3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렸다. 이 아이뿐만 아니다. 경북 영양군에서는 제때 치료받지 못한 아이들과 양수가 터진 상태로 2시간씩 표류하는 산모가 부지기수다.
 
이유는 '의사 부족'이다. 영양군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도, 산부인과 전문의도 없다. '의료 사막'으로 불리는 경북에서도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전문의가 모두 '0명'인 시군은 영양군이 유일하다.
 
현재 영양군에 있는 의사는 대부분 공보의다 보니, 섬세한 조치가 필요한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진료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공보의들마저도 하루에 최대 100명의 환자를 진료하며 격무에 시달리는 만큼, 소아청소년과 임신부들은 영양군에서 응급조치를 거의 받지 못한다.

영양군 소아와 청소년 1200여 명과 매년 태어나는 30여 명 안팎의 신생아까지 천여 명이 넘는 영양군의 아이들과 부모들은 척박한 경북 의료 상황 속에서 의사가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얼굴·손 찢어져도 '치료 거부', 마취 없이 재갈 물고 꿰매기도

11일 경북 영양군보건소에서 만난 학부모들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없어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곽재화 기자

지난 11일 경북 영양군보건소 모자보건실에서 만난 영양군의 학부모들은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없어서 응급상황에도 아이들이 치료받지 못한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영양 토박이이자 세 아이(15세·9세·3세)의 어머니인 박하나(39)씨는 손이 찢어지는 응급상황에도 치료를 못 받아, 마취 없이 재갈을 물고 겨우 꿰맸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이가 과도에 손이 찢어졌는데 영양에서는 붕대만 감아줬다. 아이라서 치료하기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안동으로 가서 꿰매려고 했는데 마취과 선생님이 없다고 다음날 외래로 오라고 하더라"면서 "응급인데 좀 해달라고 읍소해서 마취 없이 재갈 물고 열 바늘 꿰맸다"고 설명했다.
 
남중생을 키우는 학부모인 박은정 영양군보건소 진료지원팀장은 "어느 날 오전에 아이가 놀다가 이마가 찢어졌다. 그래서 영양, 안동에 전화를 모두 돌렸지만 안 받아줘서 저녁이 돼서야 대구파티마병원에서 겨우 꿰맸다. 끝나고 나니 새벽이었다"고 회고했다.
 
영양의 부모들에게 대도시권의 '좋은 소아과'는 사치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1시간 거리의 안동의 2차 병원으로 가면 경북 각지에서 몰려든 환자들로 대기시간만 4시간이 걸린다. 오전 일찍 도착하면 오후가 돼야 의사와 대면할 수 있는 것이다.
 
영양군보건소가 소아외과 치료 경험이 있는 외과 봉직의를 구했을 때 엄마들끼리 카페에서 커피잔을 부딪치며 '짠'하기도 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전했다. 그러나 최근 해당 의사가 계약 만료로 영양군을 떠나게 되면서 걱정거리가 다시 늘었다.
 

양수 터져도 분만 거부…"대도시 병원서 미리 진료기록 만들어놓는 꿀팁까지"

11일 만난 김서경 씨는 최근 대구 경북대병원에 '진료기록'을 만들어놓으러 갔다고 말했다. 곽재화 기자

의사 부족은 '임신부'의 생명도 위협하고 있다. 현재 영양군에는 산부인과 전문의도, 산부인과도 없다.
 
경북도에서 '찾아가는 산부인과' 왕진 차량을 운용하고 있지만, 분만은커녕 정밀초음파 같은 오랜 시간이 드는 검진도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양수가 새는 등 응급상황이 생기면 '분만 거부'와 직면하게 된다. 기존에 진료기록이 없는 산모나 위험한 산모의 경우, 의료진의 부담이 크다 보니 각 병원에서 분만 거부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박하나 씨는 양수가 터졌지만 분만 거부로 안동이 아닌 2시간 거리의 대구까지 가야 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박 씨는 "양수가 터져서 응급차를 타고 안동의 한 병원으로 갔다가 (분만을 거부해서) 사설 구급차를 불러서 원래 진료를 받아왔던 대구로 다시 갔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병원을 찾지 못한 한 산모가 구급차 안에서 출산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렇게 응급상황에서 분만 거부가 횡행하자, 미리 대구 등지의 대형병원에 진료기록을 만들어놓는 '꿀팁'까지 공유되기도 한다.
 
이날 영양군보건소에서 만난 5개월 차 임산부 김서경(31) 씨는 "멀긴 하지만 대구 경북대 병원에 가서 진료기록을 만들어놨다. 진료기록이 없으면 (분만) 거부당하다 보니 미리 만들어 두라는 선배 산모들의 조언이 있었다"고 말했다.
 

빈약한 의료인프라에 자녀계획 단념…"자녀 생기자마자 직장 관뒀다"

경북 영양병원에 소아청소년과가 있지만 진료는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대신하고 있다. 곽재화 기자

이렇게 빈약한 의료인프라는 결국 '지역 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
 
예컨대 영유아의 경우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는 영유아 검진부터 잔병치레까지 병원 갈 일이 많다. 그러나 영양군에서는 영유아 검진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어 1시간 거리인 안동까지 가야 한다. 이렇게 어려움이 누적되다 보니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예 자녀계획을 단념한다는 것이다.
 
최근 안동으로 이사했다는 영양군 공무원 A씨는 "사실 아이를 하나밖에 안 낳은 이유도 병원 문제가 크다. 애들 병원 갔다 오려면 연차를 쓰고 하루를 통으로 빼야 한다. 입원이라도 하면 일주일을 출근 못 하다 보니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박하나 씨 역시 "원래 직장을 다니다가 아이가 태어나고 그만뒀다. 자영업이라면 몰라도 취직을 하면 '아이가 또 아프냐'는 소리 들어야 한다"면서 "아마 대도시에 살았으면 넷째까지 생각했을 텐데, 셋째까지 낳고 보니 (영양에서) 넷째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영양의 한 카페에서 만난 30대 여성 B씨는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더 어릴 때(영유아기) 왔으면 못 버텼을 것 같다. 정 영양에 오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자녀가) 영유아기가 지난 뒤 오라고 말릴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소아과 의사 수, 대구의 '절반'…"경국대 국립의대 절실"

경상북도 제공

결국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의사 충원'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인접한 대구 수준으로라도 의사를 충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14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연령 구간 인구 통계를 보면, 지난 6월 기준 대구 지역 소아청소년(0~19세) 수는 34만 3716명, 경북은 33만 8273명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서미화·권칠승 의원실에서 확보한 자료를 종합하면, 경북 지역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는 191명으로, 대구(377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경북 소도시 인구는 안동 등 경북권 대도시로, 경북권 대도시 인구는 대구 등 광역시로 빠져나가는 '이중 인구 유출'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경북도는 내년 정부의 지역의사제 시행과 더불어 현재 의사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정원 50명 규모의 국립경국대 의대 설립 계획안을 최종 심사받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경북은 1천명당 의사수가 1.4명으로 전국 최저인데 면적은 가장 넓어서 의료취약지가 많다"면서 "경북 지역에 3차 병원으로 동국대 경주병원이 있지만 실습병원은 타지에 있어 한계가 있는 만큼 지역의료 공급을 위해 경국대 의대를 꼭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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