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전국 4대 항만공사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 정책을 뒷받침해야 하는 집권여당 지역 조직이라는 위치와 항만공사 통합에 반대하는 부산 지역 여론 사이에서 명확한 입장을 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산시의회 소속 민주당 의원 11명은 이미 국민의힘 소속 송상조 부의장이 대표 발의한 '전국 4대 항만공사 강제 통합 추진 철회 촉구 결의안'에 모두 이름을 올린 상태다.정부 정책을 그대로 지지하자니 같은 당 시의원들의 기존 입장과 충돌하고, 통합 반대를 공식화하자니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공공기관 개혁 정책에 지역 시당이 반기를 드는 모양새가 되는 셈이다.
정부는 '통합' 속도 내는데…부산에서는 반대 목소리
정부는 이달 초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을 통해 부산항만공사(BPA)와 인천항만공사(IPA), 울산항만공사(UPA), 여수광양항만공사(YGPA)를 가칭 '한국항만공사'로 통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해양수산부도 이후 공공기관 기능개혁 TF를 발족하고 4개 항만공사 기관장이 참석하는 회의를 여는 등 통합법인 출범을 위한 후속 절차에 들어갔다.
정부는 유사·중복 기능을 정비하고 분산된 기능을 연결해 효율성을 높인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부산 지역에서는 부산항의 독립성과 투자 결정권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거세다.
부산시의회 해양도시안전위원회는 최근 국민의힘 송상조 부의장이 대표 발의한 항만공사 통합 철회 촉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에는 항만별 전문성과 자율·책임경영을 보장하고 물리적 통합 대신 항만공사 간 협력체계를 강화하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민주당 시의원 11명은 이미 '통합 반대'에 이름
부산 민주당을 곤혹스럽게 하는 대목은 소속 시의원들이 이미 통합 반대 입장을 사실상 공식화했다는 점이다.제10대 부산시의회 민주당 소속 의원은 한갑용 원내대표를 비롯해 강승주(강서1), 김정원(비례), 김태희(북구4), 남명숙(비례), 라기오(기장2), 박상현(영도2), 박정순(사하4), 정영수(강서2), 조용우(비례), 최은영(해운대2) 의원 등 모두 11명이다.
이들은 국민의힘 소속 송상조 부의장이 대표 발의한 통합 철회 결의안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한 민주당 시의원은 이와 관련해 "시의회가 국민의힘 절대다수라고 해서 부산 현안에 대한 결의안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협치 차원에서 함께해야 하는 사안이 있는데, 그렇다고 결의문에서 민주당 의원들 이름만 빼기도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시의회는 전체 48석 가운데 국민의힘이 37석, 민주당이 11석을 차지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수적 열세 속에서 부산 현안을 놓고 국민의힘과 무조건 선을 긋기보다는 사안별 협치가 필요한 현실적인 고민도 깔려 있다는 것이다.
박홍배 "진작 시의원들과 소통했어야…내가 한발 늦었다"
정작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부산시당위원장을 중심으로 새 지도부 진용을 갖춘 민주당 부산시당은 아직 항만공사 통합 문제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박 위원장은 14일 부산시의회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부산시당 차원에서 어떤 공식적인 입장을 낼지 고민하고 있다"며 "통합한다면 부산에 본사를 둬야 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맞는지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 반대'도, '통합 찬성'도 아닌 신중론에 가까운 입장이다.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박영미 부산시당 수석대변인도 이날 "통합적인 운영 방식이 필요하다는 큰 방향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어떤 형태의 물리적 통합이 맞는지는 더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박 위원장은 소속 시의원 11명이 먼저 통합 반대 결의안에 동참한 데 대해서는 시당과 시의원단 간 소통 부족을 인정했다.
박 위원장은 "진작 시의원 11명과 소통했어야 했는데 내가 한발 늦었다"며 "시의원들도 전원 초선이다 보니 개별 입장을 어떻게 내고, 부산시당과 입장을 어떻게 조율할지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냐 부산이냐…'찬반' 넘어 부산 민주당 해법 시험대
문제는 정부의 통합 작업이 이미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해수부는 항만공사 통합법인 추진단 구성과 통합 과정에서 검토해야 할 사안, 일정 등을 논의하고 있다.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후속 작업이 시작된 만큼 부산 민주당 역시 어느 시점에는 명확한 입장을 정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으로 선택지는 어느 쪽도 간단하지 않다.
시당이 정부의 통합 방침을 그대로 지지할 경우 부산항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해온 지역 여론은 물론 이미 통합 반대 결의안에 동참한 소속 시의원 11명과도 엇박자를 낼 수 있다.
반대로 통합 철회를 공식 요구하면 집권여당 부산시당이 이재명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 방침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모양새가 된다.
결국 부산 민주당이 '통합 찬성이냐 반대냐'라는 이분법을 넘어 부산항의 자율성과 정부가 내세운 공공기관 효율화를 동시에 담을 제3의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특히 박홍배 시당위원장 체제가 출범 직후부터 강조해온 '부산 현안에 대한 중앙정부와의 소통 능력'도 이번 사안을 통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정책과 지역 이해가 충돌할 때 중앙정부의 입장을 지역에 전달하는 데 그칠지, 아니면 부산의 목소리를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집권여당의 통로 역할을 할지 부산 민주당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