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1930년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다윈이 없었다면 자연선택설은 탄생하지 못했을까.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스마트폰의 역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7년 만의 신작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에서 문명과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개인'의 힘을 파고든다.
다이아몬드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어떤 변화가 특정 인물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이 없어도 시대의 흐름 속에서 결국 일어났을 변화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셰익스피어가 없었어도 '햄릿'이 나올 수 있었는지를 묻는 방식의 사고 실험을 '햄릿 테스트'라고 부른다. 정치 지도자의 암살과 질병, 최고경영자(CEO)의 갑작스러운 죽음, 스포츠 감독 교체처럼 우연히 발생한 사건도 일종의 자연실험으로 활용한다.
책은 정치와 비즈니스, 스포츠, 종교 등 네 영역을 오가며 리더의 영향력이 커지거나 제한되는 조건을 비교한다. 보츠와나의 세레체 카마가 다이아몬드 자원을 국가 발전으로 연결한 사례, 레이첼 카슨이 과학적 지식과 대중적 글쓰기를 결합해 환경운동의 흐름을 바꾼 사례 등이 등장한다.
제프 베이조스와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의 성공도 개인의 역량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기술과 자본, 인재, 시장과 시대적 기회가 함께 맞물렸다는 것이다. 반대로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권한과 제도, 조직적 조건이 다르면 영향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스포츠에서는 감독 교체가 실제 성적 향상을 가져오는지를 통계적으로 살핀다. 새 감독이 부임한 뒤 성적이 오르는 현상 중 상당 부분이 일시적으로 나빠졌던 성적이 평균 수준으로 돌아오는 과정일 수 있다는 점도 짚는다. UCLA 농구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사례를 통해서는 전임 명장이 남긴 과도한 기대치가 후임 감독 평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분석한다.
종교 영역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창시자 한 사람만으로 종교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가와 후계자, 공동체와 정치적 조건이 결합해야 영향력이 확장된다고 설명한다.
다이아몬드는 결국 '위대한 리더'라는 통념과 모든 것을 구조로 설명하는 결정론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다. 리더는 분명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영향은 개인의 재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능력과 권한, 제도, 기회, 우연, 그리고 시대가 만나는 순간에 비로소 한 사람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선출하고 CEO를 선임하며 감독을 교체할 때마다 우리는 한 사람에게 변화를 기대한다. 이 책은 그 기대 가운데 어디까지가 합리적인지, 또 실패와 성공의 책임을 어디까지 개인에게 물을 수 있는지를 데이터와 역사적 사례로 따져본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 강주헌 옮김 |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