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칭 '메가특구특별법'의 노동 특례를 놓고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하면서 6년 만에 노사정 대화판이 다시 깔릴지 주목된다.
당장은 주52시간 상한 예외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등 노동 특례가 의제지만, 정부는 이번 대화를 멈춰 선 사회적 대화를 복원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법안의 연내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어 노사가 첨예하게 맞선 쟁점을 논의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김영훈 장관은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메가특구특별법 노동 특례에 대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특례 넘어 6년 만의 '사회적 대화 복원'
'원포인트' 대화지만 정부가 부여하는 의미는 노동 특례 조율에 그치지 않는다.김 장관은 브리핑에서 "코로나 시기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이후 6년 만에 온전한 사회적 대화가 재개되는 의미가 있다"며 "사회적 대화가 복원된다면 IMF 외환위기가 불러왔던 우리 사회의 여러 상처 중 하나를 극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지난달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노동자들이 (법안을 적용받는) 일방적 대상이 아니라 (법안 결정에) 참여해야 생산성도 올라가고 성공할 수 있다"며 메가특구법 논의를 "사회적 대화 촉진의 계기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논의 단위와 기간 등 구체적인 형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국무조정실·노동부 등 관계부처와 양대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중소기업중앙회 등이 참여 주체로 거론된다.
눈에 띄는 대목은 기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별도의 대화 틀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김 장관은 "기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와 별개로 이번 법에 담길 노동 특례를 논의하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라고 강조했다. 경사노위 복귀를 거부해온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셈이다.
민주노총도 15일 별도 입장문에서 "정부가 경사노위 참여를 선행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민주노총이 제기해온 문제의식과 방향이 다르다"고 밝혔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 들어 실근로시간 단축, 퇴직연금 등에 민주노총·한국노총·경총이 모두 참여해 논의해왔다"며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스몰딜'을 해온 것이 바탕이 돼 이번 사회적 대화도 잘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법안은 연내 처리…대화에 주어진 시간 '3개월'
대화가 성사되더라도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첫 번째 변수는 법안 발의 시점이다.노동 특례를 담은 법안이 대화에 앞서 발의될 경우 노동계에서는 '선입법 후논의'라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의원 입법 형태를 취하더라도 정부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앞서 당정은 지난 4일 메가특구특별법을 연내 제정하기로 했다.
김 장관은 특례를 포함한 법안 발의 여부에 대해 "입법부의 권한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노동부 관계자도 "발의 여부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적 대화를 요청하는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다. 연내 제정 목표를 감안하면 대화에 주어진 시간은 사실상 3개월 안팎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실근로시간 단축도, 퇴직연금도 각각 3개월가량 논의했다"며 "당사자들의 필요성과 대화 의지만 있으면 3개월이면 충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의제의 무게는 다르다. 김 장관 스스로 "반도체 분야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문제는 지난 특별법 논의에서도 오랫동안 논의됐지만 결론에 이르지 못할 만큼 쉬운 의제가 아니다"라고 인정했다.
핵심 의제인 노동시간과 이른바 '2+2' 기간제 완화는 노사가 오랫동안 맞서온 사안이다. 노동시간만 해도 경영계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요구하는 반면 노동계는 주4일제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가 11월 말까지 이어지는 점도 대화의 변수가 될 수 있다.
1998년·2020년에도…노동계에 남은 '대화의 트라우마'
과거 사회적 대화의 실패 경험도 넘어야 할 산이다. 김 장관은 "노동계에서는 무엇을 양보할 것인가만 결정해야 하는 구조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사회적 대화가 번번이 실패한 것은 정답을 정해놓고 대화를 수단화했다는 오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말했다.그가 말한 '트라우마'의 뿌리는 IMF 외환위기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1월 위기 극복을 위해 출범한 노사정위원회는 같은 해 2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도입 등을 담은 첫 사회협약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합의안이 부결되면서 지도부가 총사퇴했고, 민주노총은 이듬해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도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민주노총까지 참여해 합의안을 마련했지만 내부 추인이 무산됐고 당시 김명환 위원장이 사퇴했다. 결국 협약은 민주노총이 빠진 채 체결됐다. 김 장관이 이번 대화를 제안하면서 "완전한 결론으로 가지 못했던 사례"라고 언급한 대목이다.
합의 못 해도 입법…사회적 대화의 마지막 딜레마
더 근본적인 문제는 대화의 결론이다. 김 장관은 "대화 자체가 목적"이라며 "사회적 대화 기구가 입법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결과 도출 여부와 별론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 충분히 반영될 것"이라고 밝혔다.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국회는 입법 과정에서 노동 특례의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 대화가 합의 없이 끝난 뒤 국회가 어느 한쪽의 입장에 가까운 법안을 처리할 경우 사회적 대화가 입법을 위한 명분 쌓기에 그쳤다는 반발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양대노총은 지난달 3일 공동성명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메가특구법을 추진한다면 이재명 정부와 노동계는 돌이키기 어려운 대결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전날 대화 참여 방침을 밝히면서도 "참여가 노동특례 수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6년 만에 대화는 다시 시작될 수 있지만, 이번에도 관건은 누가 참여하느냐보다 무엇에 합의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