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송전망 건설에 따른 주민 반발을 줄이기 위해 신규 송전탑을 절반 가까이 줄이기로 했지만, 오히려 송전망 인근 지역의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 짓는 송전탑은 47%가량 줄어드는 대신 하나의 철탑에 더 많은 회선을 얹으면서 철탑 자체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관 훼손이 심해지는 데다 태풍·낙뢰·산불 등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가 한꺼번에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5일 국무회의에서 신규 송전탑 건설 계획을 기존 4723기에서 최대 2509기까지 줄이는 내용의 '송전망 건설 수용성 제고방안'을 보고했다.
핵심은 기존 송전선로와 새로 건설할 선로를 하나의 철탑에 함께 설치하는 방식이다. 기존 2회선과 신설 2회선을 합쳐 4회선 철탑을 세우면 신규 철탑 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철탑의 대형화다. 하나의 철탑이 감당해야 할 전선의 무게와 바람을 받는 면적이 늘어나는 만큼 구조 보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호남대학교 AI융합학부 전기공학전공 서영금 교수는 CBS노컷뉴스에 "(하나의 철탑에) 4회선을 얹으면 구조 보강이 따라붙게 된다"며 "(이럴 경우) 철탑은 커지고 높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후부 이재식 전력망정책관은 전날 언론 브리핑에서 이번 방식으로 공사기간과 사업비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지만, 4회선 선로가 들어갈 철탑의 규모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경관 훼손이 주민 반발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돼온 만큼, 철탑 수를 줄이는 것만으로 수용성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정책위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송전망을 줄이겠다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사실 경관 문제가 계속 지적됐던 것인데, 송전탑이 더 높아지면 오히려 인근 지역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 커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쟁점은 여러 회선을 하나의 철탑에 집중하는 데 따른 위험이다. 태풍이나 낙뢰, 산불 등으로 철탑이나 송전선로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여러 회선이 동시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김승완 교수는 "해외는 1회선 시공을 주로 하는데, 우리나라는 땅이 좁다 보니까 2회선 시공을 하고 있다"며 "원래 회선 밀도가 해외보다 높았는데, 4회선으로 또 늘리니까 특정 지역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송전망 건설 속도를 높이는 효과는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방안으로 송전망 건설이 확실히 빨라지는 것도 맞다"며 "모든 지역을 그렇게 하는 건 리스크가 크니까 잘 따져보고 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신규 송전탑을 줄이는 동시에 송전망 주변 주민에 대한 보상과 소통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계통햇빛소득마을'을 조성해 태양광 발전을 통한 주민 소득 창출을 지원한다.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에 따라 송전선로 경과지역 지방자치단체에 지급하는 지원금의 3분의 2를 마을 태양광 설치에 우선 활용하는 방식이다. 기후부는 가구당 연간 300만원 안팎의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민 참여 절차도 강화한다. 사업설명회를 입지선정 초기 단계부터 열도록 의무화하고, 입지선정위원회 운영 과정에서 여는 설명회도 기존 2차례에서 3차례로 늘린다. 주민의 회의 참관도 원칙적으로 허용한다.
결국 송전탑 숫자를 줄이고 보상을 늘리는 것만으로 주민 반발을 해소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 정책위원은 "주민 수용성 문제를 풀 때 소득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선 결정 과정에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안들이 그동안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정부 발표는 큰 틀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실효성 있는 후속 조치가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