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끝까지 던지겠습니다."
마운드를 향한 간절함과 선후배의 자존심이 충돌했다. 116구의 투혼을 불태운 박세웅과 묵직하게 맞선 원태인, 경북고 출신 에이스들이 대구의 밤을 뜨겁게 달궜던 그날의 명승부 뒷이야기가 전해졌다.
지난 15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열렸다. 이날 경북고 선후배 사이인 롯데 박세웅과 삼성 원태인이 팽팽한 선발 맞대결을 벌였다. 두 투수는 각각 116구와 106구의 공을 던지며 대구의 밤을 뜨겁게 달궜다.
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취재진과 만난 삼성 박진만 감독은 전날 치열했던 에이스들의 맞대결을 떠올렸다. 당시 원태인은 5⅔이닝 4피안타 2사사구 4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이에 맞서 박세웅은 6이닝 8피안타 4사사구 2탈삼진 2실점으로 맞불을 놓았다.
박세웅에게 이번 경기는 명예를 되찾는 의미 깊한 자리였다. 그는 올 시즌 3승 9패 평균자책점 5.01로 부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직전 등판이었던 8일 NC전 당시 김태형 감독의 지도 장면 등으로 마음고생도 심했다.
진가가 발휘된 것은 6회말이었다. 이미 5회까지 94구를 던졌던 박세웅은 마운드에 홀로 섰다. 그는 1사 1, 3루 위기에서 박승규를 3루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투구수 110구를 넘겼다. 이어 타율 1위 구자욱과 맞닥뜨렸다.
중계화면에 포착된 김상진 투수코치와의 대화에서 박세웅은 "제가 끝까지 던지겠습니다"라는 의지를 내비쳤다. 사령탑과 코칭스태프의 신뢰 속에 마운드를 지킨 순간이었다. 박세웅은 구자욱을 상대로 137km 포크볼을 꽂아 넣었다. 풀카운트 접전 끝에 중견수 뜬공으로 돌려세운 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는 2021년 6월 수원 KT전 완봉 당시 기록했던 117구에 육박하는 커리어 최다 투구수 경지에 가까운 투혼이었다. 삼성 선발 원태인이 6회를 채우지 못하고 내려간 것과도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박진만 감독은 박세웅의 투구 내용에 대해 "어제 세웅이가 볼이 참 좋았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경북고 선후배 사이이자 라이벌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평소 상대했을 때보다 구속도 좋고 공에 힘이 실려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진만 감독은 마지막 6회 상황을 회상했다. 그는 "태인이가 마지막 타석에서 (나)승엽이랑 계속 치열하게 상대를 하다 보니 원래 생각했던 투구 수보다 늘어나 결국 100개를 넘겼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웅이가 선배인데, 마지막에는 선배 대우를 해준 셈"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비록 롯데 야수들이 7회초 3-2 역전 드라마를 쓰며 박세웅에게 승리 투수 요건을 안겼으나 해피엔딩으로 마치지는 못했다. 8회말 불펜이 붕괴하면서 팀이 3-7로 재역전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스로서 책임감을 증명한 박세웅의 투혼은 가을 야구를 향한 순위 싸움 속에서 오래도록 깊은 여운을 남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