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뒤에서 시선의 주체로 서는 일, 그리고 스크린 너머로 마침내 자신의 언어를 들려주는 일. 영화라는 세계에서 여성과 젠더퀴어 창작자들의 목소리는 늘 견고한 벽을 마주해 왔으나, 동시에 가장 담대하게 스크린의 경계를 확장해 온 동력이기도 했다.
오는 10월 6일 막을 올리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유럽영화진흥기구(European Film Promotion, EFP)와 협력해 유럽의 여성 및 젠더퀴어 감독들을 조명하는 특별 프로그램 'EUROPE! VOICES OF WOMEN+ IN FILM'을 선보인다. 지난해에 이어 마련된 이번 프로그램은 부산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 영화계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포개어 안는 미학적 거점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대극부터 다큐까지…'개인의 경험'을 '정치적 시선'으로 확장하다
올해 집중 조명되는 9편의 작품은 시대극과 다큐멘터리, 현대극을 가로지르며 대담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정치적 시선을 교차시킨다. 개인의 밀도 높은 경험을 기억과 역사, 자유와 친밀함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화두로 확장해 내는 솜씨가 매섭다. 특히 9편 중 4편이 신진 감독들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점은 유럽 영화계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감각적인 세대교체의 파동을 실감케 한다.황금사자상 마이 엘투키 등…세계가 주목한 거장과 신예의 라인업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인물은 덴마크 여성 감독 최초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마이 엘투키 감독이다. 수상작 <마리가 뭐 어때서>와 함께 부산을 찾는 그는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안긴 배우 마틸드 아르셀과 함께 작품이 지닌 뜨거운 에너지를 부산 관객에게 전할 예정이다.이 밖에도 마린 아틀랑 감독의 <라 그라디바>, 이란 활동가 페가 아항가라니 감독의 <리허설 포 레볼루션>,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대상작인 산드라 볼너 감독의 <에브리타임> 등 서사의 스펙트럼을 넓힌 수작들이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린다.
유럽과 아시아, 경계를 넘어 스크린의 내일을 교차하다
영화 상영을 넘어 동시대 여성 영화인들이 서로의 시선을 교차하는 깊이 있는 대화의 장도 마련된다.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주디트 고드레슈 감독은 '주디트 고드레슈: 여성, 다시 쓰는 스크린'을 주제로 씨네 클래스를 진행한다.아주담담 프로그램 '씬(Scene)을 접수하다: 아시아·유럽 여성감독 토크'에서는 유럽과 아시아(이란·중국·아프가니스탄)의 대표 여성 감독들이 한자리에 모여 동시대 영화에서 여성의 역할과 위치에 대한 깊은 사유를 나눈다.
"우수한 작품을 발굴하는 신뢰의 플랫폼"…10월, 영화의전당서 개막
이번 프로그램을 프로그래밍한 서승희 프로그래머는 "올해 초청작들을 통해 유럽 여성 감독들의 작품 세계가 지닌 완성도와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음을 확인했다"며 "EFP와의 지속적인 협업은 세계 영화계의 뛰어난 창작자들을 아시아 관객에게 가장 먼저 소개하는 신뢰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고 있다"고 전했다.세계 영화의 지평을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물들일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영화의전당과 부산 일대에서 개최된다. 스크린 위로 피어날 이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타인의 삶과 세계를 향한 깊은 응시의 시간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