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을 두 개의 자리에서 읽었다. 하나는 신학자의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정림건축의 CPL로서 공간을 짓는 일에 관여하는 자의 자리다. 저자가 18년간 시장을 분석하며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부동산은 건물이 아니라 도시를 움직이는 하나의 운영체제라는 것. 우리가 어느 역에서 내리고 어느 카페에서 친구를 만날지, 그 당연한 선택들 뒤에 보이지 않는 자본의 흐름이 흐르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은 부동산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골목과 건물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든다.
읽는 내내 나를 붙든 것은 저자의 시선이 끝내 '사람'을 향한다는 점이었다. 파리 라데팡스에 8개월간 5.6조 원을 몰아넣은 국내 자본이 왜 반토막 났는가. 저자는 숫자는 맞았지만 그 땅을 걷는 파리지앵의 마음을 읽지 못한 오만 때문이라고 말한다. 데이터센터에서는 인간의 오감이 소음에 불과하고, 기계가 조망권도 테라스도 필요 없는 완벽한 임차인이 되어간다. 자본은 이미 인간의 감성보다 기계의 효율이 더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는 것이다. 조망권이 사라진 자리에 서버 랙이 들어서는 풍경 앞에서, 저자는 냉정하게 계산하는 자본을 향해 묻는다. 그 연산 사이에서 지켜야 할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가.
나는 이 대목에서 도시가 결국 신학의 문제임을 다시 확인했다. 성경은 에덴의 동산에서 시작하지만 새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서 완성된다. 공간은 언제나 사람이 살아가는 서사의 무대였다. 그러니 자본이 사람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효율로 채우는 흐름은, 단지 부동산 시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 것인가에 관한 물음이다.
그리고 이 물음은 곧바로 정림이 오래 붙들어 온 철학과 맞닿는다. 건축은 자본의 요구와 사람의 삶 사이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비울지를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본은 한 평이라도 더 매대를 깔고 한 명이라도 더 임차인을 들이라 요구하지만, 저자가 소개한 '더현대 서울'은 영업 면적의 절반 가까이를 비워 통로와 쉼의 공간으로 내어주었다. 평당 매출이라는 익숙한 문법으로는 손실이었으나, 그 비움이 사람을 불러 모으고 머물게 했다. 도쿄 아자부다이 힐스가 살인적 지가의 땅에 숲과 광장을 들인 것도 낭만이 아니라, 사람이 오래 머물수록 공간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통찰이었다. 정림이 지난 반세기 동안 공간을 지어 오며 지키려 한 것도 바로 이 자리였다. 건물은 자본이 세우지만,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의 서사를 먼저 상상하지 않는 건축은 결국 자본의 무덤이 되고 만다. 공간을 설계한다는 것은 효율의 극대화가 아니라, 사람이 머물 이유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책장을 덮으며 프롤로그의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모두 이미 이 게임 안에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강요된 투자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 게임의 규칙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전혀 다른 삶이다. 저자가 마지막 장에서 용산 개발을 두고 "자본이 설계한 하드웨어 안에 통제되지 않은 인간의 에너지가 머물 빈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할 때, 나는 우리가 짓는 모든 공간이 품어야 할 여백을 생각했다. 숫자 너머의 세상을 보고 싶은 이라면, 그리고 공간 안에서 사람의 자리를 고민하는 이라면, 곁에 두고 천천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김형국 목사·정림건축 CPL(Chief Philosophy 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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