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그간 세 차례 유예해온 가상자산 과세를 내년부터 본격 시행할 방침인 가운데, 업계와 야당이 여건 미비 및 조세 형평성 등을 이유로 추가 유예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내달 국정감사와 연말 세법 심사의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가상자산 업계-국민의힘 '시기상조' 공감대
국내 5대 원화 거래소 업비트(두나무)·빗썸·코인원·디지털엑스(구 코빗)·고팍스로 이뤄진 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DAXA)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 주재로 열린 '디지털자산 과세제도 개선 정책감담회'에서 정부·여당의 과세 방침에 대한 업계 우려와 애로사항 등 의견을 전달하고 제반 사항을 논의했다.가상자산 과세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건 조세 형평성이다. 가상자산 과세 논의는 문재인 정부 시기이던 2019년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에 따라 금융투자소득세 도입과 함께 시작됐다. 그러나 2023년 시행하려던 금투세가 윤석열 정부 들어 한 차례 유예된 뒤 2024년 12울 소득세법 개정으로 아예 폐지된 것과 달리, 가상자산 투자소득은 '금융투자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과세 근거가 그대로 남았다. 이대로면 내년 1월부터 과세가 시행된다.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치솟은 물가와 땅값 상승, 근로 소득만으로는 내 집 마련조차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수많은 청년 세대가 디지털자산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며 "충분한 준비 없이 과세를 서두른다면 혼란과 부담은 결국 청년 투자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금융투자소득세가 이미 폐지된 상황에서 디지털자산에 대해 현행 과세 체계를 적용하는 것이 자산 간 과세 형평성에 부합하는지 기준 자체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과세 인프라 등 여건 미비 역시 업계와 야당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내용이다. 국민의힘 임이자 정책위의장은 "취득 가액의 경우에도 해외 거래소나 개인 지갑에서 국내 거래소로 들어온 가상자산은 언제, 얼마에 샀는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기본적인 과세 자료를 확인할 체계가 아직 충분치 않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또 "비거주 과세와 새로운 거래 유형에 대한 과세 기준 등 시행 전 명확히 할 문제들이 여전히 남았다"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과세에 앞서 우선 업권법인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업계와 국민의힘 입장이다. DAXA 의장을 맡고 있는 오세진 디지털엑스 대표는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규제의 불확실성은 사업자는 물론 투자자에게도 리스크일 수밖에 없다"며 "이른바 2단계 입법인 디지털자산 기본법이 업계 숙원"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은 비공개 간담회 직후 브리핑에서 주요 논의 사항에 대해 "2022년부터 디지털자산에 과세하겠다고 얘기했지만 지금 기본법 개념조차도 없고 심지어 용어에 대한 개념도 없다"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과세부터 한다는 건 국민 공감대를 얻기 어렵단 의견"이라고 밝혔다.
스테이킹(Staking, 가상자산을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맡기고 그 대가로 보상을 받는 일종의 예치 서비스), 디파이(De-Fi·decentralized finance, 중앙기관 없이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으로 토큰 교환·대출 등 금융 기능을 제공하는 '탈중앙화된 금융서비스') 등 새로운 거래방식도 있는 만큼, 업권법을 통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한 뒤 과세를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올해 안으로 당 정무위원회 차원에서 디지털자산 기본법안을 마련해 공청회를 열고 각계 의견을 모아간다는 계획이다.
정부·여당 "내년 예정대로 시행"…시장 '술렁'
가상자산 과세 문제는 지난주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쟁점이 됐다.관련해 이 후보자는 "주식의 경우에도 현재 양도세(대주주·해외·비상장)·거래세 과세 중인 점을 감안하면 가상자산도 과세하는 것이 형평 제고에 도움이 된다"며 업계와 야당의 조세 형평성 문제 제기에 반박했다.
이 후보자는 "구체적인 과세기준은 연내 국세청 고시로 공표할 예정이며, 납세자 신고에 어려움이 없도록 할 예정"이라며 내년부터 예정대로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건 미비와 관련해선 "해외거래소 이용자의 경우 해외금융계좌 신고, 국가간 정보 교환체계(CARF) 등을 통해 과세자료 확보가 가능하다"며 "해외·사인간 거래로 수익을 은닉하는 탈세행위에는 국세청의 과세인프라를 지속 확충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다만 금투세를 비롯한 자본이득세 도입 여부에 대해선 "시장 여건이 충분히 안정된 이후 검토될 사안"이라며 "금융시장·산업 변화에 대응해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공평하고 효율적인 금융 과세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지난 17일 국회 상임위를 통과해 임명 절차만 남은 만큼, 가상자산 과세에 대한 이 후보자 입장은 추후 정부여당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투자자 사이에서도 반발이 계속되는 점은 정부여당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1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코인과세 2년 유예' 청원은 동의수 5만 명을 넘어 이달 14일 소관위에 회부됐다. 해당 청원 동의수는 21일 오후 4시 기준 5만 3809명에 달했다. 지난 5월 13일엔 '가상자산 과세폐지 청원'이 일주일 만에 소관위 회부 요건인 5만 명 이상 동의 요건을 채워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회부된 상황이다. 해당 청원 동의 건수도 5만 8571명에 달했다.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2026 국정감사 이슈 분석III-경제 분야' 보고서를 통해 '가상자산소득 과세 시점의 적정성'과 '디지털자산 시장 제도화 종합적인 로드맵 발표 시점'을 이번 국감에서 짚어봐야 할 현안으로 꼽았다. 2022년 루나 사태와 FTX 파산 등을 계기로 업권법에 앞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2023년 1단계 입법으로 제정됐는데,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사실상의 규제가 지속되면서 시장참가자가 향후 규제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시장 제도화를 위한 2단계 입법 과정에서 정부가 지향하는 시장구조와 감독체계, 제도 설계원칙 등이 충분히 제시되고 설명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