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보당국(FSB)이 미국 워싱턴DC에 거주하는 반체제 인사를 미 본토 내에서 암살하려 한 정황이 미 법무부의 기소로 드러났다. 미·소 냉전 이후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미·러 간 '상대국 본토 내 암살 금지' 불문율이 깨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이 미 법무부의 공소장을 분석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뉴욕 남부연방지검은 지난 15일 테러 자금 조달 및 청부살인 공모 혐의로 전직 FSB 대령 유리 흐라메예프(63)와 그의 아들인 현역 FSB 장교 키릴 흐라메예프(27) 등 5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이 피의자들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궐석 상태에서 미 법무부는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공소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러시아 정보체계(RIS) 네트워크 소속인 이들은 전 세계의 러시아 반체제 인사와 우크라이나 지원국을 겨냥해 암살 및 파괴 공작을 모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특히 이들이 워싱턴DC에 거주하는 저명 반체제 인사를 감시·암살할 목적으로 지난 7월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베네수엘라 국적자를 포섭한 것으로 보고 있다.
흐라메예프 등은 대가로 4만 달러를 제시하며 암살을 청부했으나, 해당 베네수엘라인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미수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미 법무부는 암살 표적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가디언은 2024년 미·러 수감자 교환 프로그램으로 풀려난 언론인 출신 야권 운동가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인 것으로 추정했다.
가디언은 러시아 정보당국이 미국 영토 한복판에서 암살을 모의한 것은 구소련 시절부터 푸틴 정권에 이르기까지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짚었다.
냉전 시기부터 양국 정보당국은 상대국 본토에서는 암살 작전을 펼치지 않는다는 암묵적 신사협정을 이어왔으나, 이번 기소로 러시아가 그 금기를 스스로 깨버렸음이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