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출근할게여!" 대기업 17년차의 빵 맛집 재취업 성공기

"엄마가 수술 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셔서 6년 전에 어쩔수 없이 회사를 그만뒀어요. 그런데 여기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됐어요. 대기업 다닐 때보다 지금 여기서 일하는 게 너무 행복해요. 매장 분홍색 문을 딱 보는 순간 동료들이 안에 있다는 생각에 뛰어서 들어와요."

17년간 다니던 식품 대기업을 퇴사한 이모(52)씨가 매장 매니저로 재취업에 성공한 곳은 서울 등촌동에 위치한 '베이커리 굿니스'다. 마을버스, 지하철, 또 버스. 1시간 30분 동안 대중교통을 세 번 갈아타야하는 거리지만 정씨는 출근길이 전혀 고되지 않고 설렌다고 했다.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베이커리 굿니스'에서 매장 매니저 이모(52)씨가 손님을 응대하고 있다. 조혜령 기자

베이커리 굿니스는 제과·제빵 전문 기술 교육을 제공하고, 오프라인 매장 운영을 통해 실질적인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민·관·공 협력형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다.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KB증권이 한국공항공사, 지자체와 손을 잡고 지난 3일 서울 등촌동에 문을 열었다. 한국공항공사가 매장 임대료와 시설·장비 구입을 지원하고 KB증권이 매장 인테리어 전반을 후원했다.

방문한 매장에서는 깜빠뉴에서 나는 따끈한 연기와 소금빵의 고소한 버터 향이 문 밖으로 흘러나왔다. 상가 건물 2층에 있지만 계단을 오르내리는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매장을 찾는 손님이 꽤 많이 늘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빵 맛집'으로 입소문도 타고 있다.

베이커리 굿니스는 지난해에는 다문화 이주여성에게, 올해는 은퇴 중장년 10명에게 제빵 기술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강서희망나눔복지재단이 주관하고, 등촌종합사회복지관이 매장 운영을 맡는다. 오프라인 매장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판매 수익금은 고용 창출과 취약계층 지원에 전액 재투자된다. 지난 7월에는 사업성과 공익성을 인정받아 서울시로부터 예비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맛있는 빵 만들려 성심당 두 번 다녀와…금융사들 따뜻한 지원 '눈길'

'사회적 기업'에 그치지 않고, 일반 매장과 경쟁해도 뒤쳐지지 않는 빵을 만들자는 게 굿니스의 목표다. 당일 생산 당일 판매 원칙도 세웠다.

베이커리 굿니스 운영을 주관하고 있는 강서희망나눔복지재단측은 "빵을 많이 팔아야 추가로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며 "그러려면 빵이 맛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대전의 유명 빵집인 '성심당'을 두 차례 찾아 관계자들에게 매장 운영 등 노하우를 듣기도 했다.

재료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지난 4월부터 굿니스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정미라(58)씨는 "저희가 버터는 무조건 앵커 버터를 쓰고 진심으로 하고 있다"며 "좋은 재료로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고 말했다.

제빵 교육생 정미라(58)씨가 오븐에 생지를 넣고 있다. 강서희망나눔복지재단 제공

매장의 인기 상품은 소금빵과 페스츄리, 그리고 깜빠뉴와 같은 건강빵이다. 기업들의 복지 차원의 주문 이외에도 동네 주민 단골도 생겼다.

매장에 방문한 한 고객은 "지난번에 먹어보고 맛있어서 또 사러 왔다"며 소금빵을 여러 개 담아가기도 했다.

매장 매니저인 이모씨는 "100% 앵커버터만 쓰다보니 단가가 맞지 않는데, 주변에 나이 드시고 아프신 분들이 어디 가서 좋은 재료로 만든 빵을 드시겠냐며 재료비는 생각 안 하고 빵을 만들고 있다"며 웃었다.

KB증권과 베이커리 굿니스 사례처럼 최근 금융사들이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각종 사회적 기업 활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이동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을 위해 재택형 일자리인 말벗상담원 20명을 채용했고, 미래에셋은 금융사 전문성을 활용해 가족돌봄청년들에게 금융투자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전국의 영업점을 축소 운영하는 대신, 남는 공간에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기부 물품을 판매하는 '굿윌스토어'를 설치하기로 했다.

금융사 관계자는 "일회성 지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금융사들의 특징을 잘 활용해 취약계층의 자립을 돕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포용금융 가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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