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겐 편지, 딸에겐 못다 한 말…참사 630여일 공항서 맞는 추석

아들 영정 앞 약속 지키며 매일 메신저 편지 쓰는 아버지
딸에게 못다 한 말 남기고 손주들 학교 곁 떠난 노부부
진상규명 기다리는 유족들, 추석 25일 공항서 합동 차례

23일 무안국제공항 내부에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조형물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정유철 기자

"만약에 사고가 없었으면 아마 아들은 결혼을 해서 함께 평범한 명절을 보냈겠죠."

23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만난 손주택(68)씨는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이번 추석은 며느리와 함께 보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아들을 결혼시키려고 집까지 알아보던 참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여자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630여 일이 흘렀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던 명절은 공항 분향소 앞에서 함께 차례를 지내는 날로 바뀌었다.

공항에는 유족들이 머무는 보호 텐트 40개가 마련돼 있다. 생업과 집안일로 오가는 가족들도 있지만 손씨처럼 이곳을 지키며 두 번째 추석을 맞는 이들도 있다.

23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손주택(68)씨가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잃은 아들에게 매일 휴대전화 메신저로 보낸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유철 기자

아들에게 매일 보내는 메신저…진상규명 약속 지키며 공항서 두 번째 추석

손씨의 아들은 공기업에 근무하며 탁구 동호회 총무를 맡아 주말마다 대회에 나가던 청년이었다.

일곱 살 위 누나와는 한두 시간씩 통화하며 축구 이야기를 나눴다. 명절이면 딸, 아들이 모여 부모를 찾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특히 가족들은 함께 여행을 다녔다. 참사 직전에도 가족 해외여행을 계획했지만 딸의 바쁜 회사 일정으로 성사되지 않았다. 아들은 가족 대신 여자친구와 크리스마스에 출국했고 나흘 뒤 귀국길에 참사를 당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들에게 말을 건넨다. 지난해 2월 10일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휴대전화 메신저로 편지를 쓰고 있다.

손씨는 "아들 영정 앞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곁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며 "집에 돌아간다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참사 직후 가족들과 아들의 원룸을 정리하던 순간도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딸과 사위, 손녀·손자를 잃은 여흥구(73)씨가 23일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유가족 쉘터 앞에 서 있다. 정유철 기자

딸에게 못다 한 '고맙다' 표현…손주들 학교 보이는 집 떠난 노부부

참사로 딸과 사위, 손녀·손자를 잃은 여흥구(73)씨에게도 명절은 가족이 모이는 날이었다.

출가한 딸이 시댁에 들렀다가 친정으로 오면 함께 밥을 먹고 산소에 다녀왔다. 가족들이 모여 옛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시간이었다.

삼남매 중 장녀인 딸은 사위와 함께 의사로 일하며 아픈 이들을 돌봤다. 여씨에게는 든든한 기둥이었고 아내에게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아내가 키운 손주들은 할머니를 유난히 따랐다.

여씨 부부는 집에서 손주들이 다니던 학교가 보이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 학교를 바라보며 우는 아내를 위해 부부는 결국 이사했다.

여씨에게는 딸과 사위에게 충분히 전하지 못한 말도 남아 있다. 선물을 받거나 어렸을 때부터 딸이 잘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맙다', '잘한다'고 더 많이 말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여씨 또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진상규명을 꼽았다.

여씨는 "진상규명이 제대로 돼야 다음에 이런 사고가 없다"며 "사고 원인을 밝혀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3일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합동분향소에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 추모 꽃들이 놓여 있다. 정유철 기자

유족들 진상규명·공식 사과 촉구…총리실, 수습·지원 요구 답변 예정

김성철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사는 참사가 일어난지 630일이 넘어간 시점에 "다 지쳐가고 있다"며 유족들의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김씨는 "진상규명과 관련해 관계기관들이 공개가 어렵다거나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반복해 왔다"며 "당시 유해 수색을 종료한 결정 경위와 책임을 밝히고 공식 사과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유족들은 추석 당일인 25일 오전 9시 공항 분향소 앞에서 합동 차례를 지낼 예정이다.

앞서 유가족협의회는 지난 8월 13일 한성숙 국무총리와의 간담회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사고조사 인력·예산 확충과 해외 전문인력 지원, 블랙박스 원본 데이터 공개 등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오는 30일 국무총리실은 무안공항을 찾아 간담회에서 전달한 유해 수습과 장례 지원 등 요구사항에 답변할 예정이다.

유족들은 이날 유해 재수색 현장에서 수색 경과를 설명받고 국무총리실 소속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장 등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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