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한국 경제의 성장 전망이 잇따라 상향 조정되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성장률뿐 아니라 국민소득과 지역 소비 등에서도 호황의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에서 시작된 성장세를 다른 산업과 지역으로 얼마나 폭넓게 확산할 수 있을지가 향후 과제로 꼽힌다.
26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 23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2%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7월 전망보다 0.6%포인트 높인 것으로, 4월 전망 이후 두 차례 연속 전망치를 끌어올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같은 날 올해 한국 성장률을 3.7%, 내년은 2.6%로 각각 전망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3월 1.7%에서 6월 2.6%, 이번에는 3.7%까지 높아졌다.
한국은행 역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2월 2.0%에서 5월 2.6%, 8월 3.3%로 잇따라 올렸다. 내년 성장률 전망도 2.1%에서 2.9%로 상향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교역조건 개선, 내수 회복 등이 성장률 전망을 끌어올린 배경이다. 실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6% 성장했고,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전년 동기 대비 15.6% 증가했다.
반도체가 끌어올린 성장…수출 209% 급증
수출은 반도체 호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8월 수출은 982억5천만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68.7% 증가했다. 반도체 수출은 466억5천만달러로 209.0% 급증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반도체 이외 품목의 수출도 20% 늘었고 20대 주요 수출품목 가운데 14개 품목의 수출이 증가했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메모리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개선과 투자 확대도 이어지고 있다.
한은도 올해 성장률 전망을 높인 주요 배경으로 반도체 경기 호조를 꼽았다. 예상보다 강한 반도체 수출 증가세가 재화수출과 설비투자를 끌어올리고, 기업 실적 개선이 가계소득과 소비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OECD 역시 반도체 수출이 성장과 민간투자를 견인하고 소비도 점진적으로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성과급→소비로…반도체 호황 지역경제에도 '온기'
반도체 호황의 효과는 일부 대기업의 실적 개선을 넘어 국민소득과 지역경제로도 확산하는 모습이다. 한은에 따르면 2분기 실질 GDI는 전년 동기 대비 15.6% 증가했다. 같은 기간 GDP 성장률 3.7%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반도체 가격 상승과 수출 호조 등에 따른 교역조건 개선으로 실질무역이익이 늘면서 국민경제의 실질 구매력이 크게 개선된 영향이다.
지역경제에서도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한은이 이천·화성·청주 등 반도체 종사자 비중이 높은 지역의 카드 소비를 분석한 결과, 성과급 지급 이후 해당 지역의 월별 소비는 다른 지역보다 최대 약 4%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지난해부터 올해 말까지 반도체 기업 성과급에 따른 누적 소비 증가액을 약 1조7천억원으로 추정했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 개선이 임직원 성과급을 거쳐 지역 소비로 이어지는 경로가 확인된 셈이다.
반도체·AI 투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성장의 효과를 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기존 주력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과 투자 확대로 연결하는 것도 과제다. 성장세가 특정 산업에 집중될 경우 산업·기업·지역별 회복 속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OECD가 한국에 지역별 특성에 맞는 정책을 통해 지역 간 경제 격차를 줄이고 생산성 성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반도체 성장'을 '경제 전체 성장'으로…AX가 연결고리
지난 22일 취임한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잠재성장률 반등과 양극화 축소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청년·소상공인·중소기업 등 취약부문 지원과 지방주도성장,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을 통해 성장의 온기를 확산하겠다는 구상이다.전문가들은 반도체 호황을 다른 산업과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화여대 석병훈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이 좋아서 수혜를 가장 크게 본 그룹 중 하나는 주주들"이라며 "주가 상승으로 주주들이 얻은 이익을 다른 산업이나 다른 분야로 환류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실적 개선을 투자 확대로 연결하는 것도 방법이다. 석 교수는 "주가가 올랐을 때 해당 기업들이 유상증자를 통해 투자 자금을 마련하고, 이 자금으로 투자를 늘리면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생긴다"며 "건설회사 등 다른 산업에도 일거리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제조업의 AI 전환(AX)도 강조했다. 그는 "AI와 반도체 투자를 늘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 흐름이지만, AI 기술을 다른 제조업의 경영이나 생산에 접목해서 다른 주력 제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도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