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씌워진 '간첩' 누명…재심 청구에 검찰 또다시 '기각' 의견

검찰, '반공법 위반' 故김정구씨 재심 청구 기각 의견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 연루…억울함 해소 못한 채 눈 감아
재심 한 차례 기각에 진화위 조사 대상도 아냐…변호인 "재심 기각 부당"

지난 1월 29일 고 신충관 씨의 재심 무죄 기자회견에서 고 김정구씨의 아내 박선례씨가 "우리 남편도 평생 고통받으며 살다 가셨는데 재심이 기각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심동훈 기자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한 고(故) 김정구씨의 두 번째 재심 신청을 두고, 검찰이 '기각' 의견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제3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납북귀환어부 사건을 1호 직권조사 사안으로 두고 진실 규명에 힘쓰고 있는 가운데, 검찰의 연이은 기각 의견이 국가폭력의 피해자의 억울함 해소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평범한 어부에서 '간첩'으로…故김정구씨에 가해진 국가폭력

1976년 10월 19일 전북 군산경찰서가 작성한 범죄인지보고서. 최정규 변호사 제공

25일 CBS노컷뉴스 취재에 따르면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김씨의 '반공법 위반' 재심 신청을 두고 '기각'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는 앞서 한차례 기각 결정이 내려진 데 이은 두 번째 기각 의견이다.
 
김씨는 납북귀환어부 사건의 피해자다. 납북귀환어부는 1960~1970년대 동해상과 서해상의 남북한 접경 지역에서 조업을 하다가 북한 경비정에 피랍돼 북한에 억류됐다가 남한으로 돌아온 어부를 칭한다.
 
국가는 납치된 후 귀환한 어부들이 간첩이라며 잡아들였고, 귀환한 어부들이 전한 북한에서의 일화를 수사기관에 알리지 않거나 동료에게 전달한 동료 어부들도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했다는 혐의로 잡아들였다. 김정구 씨는 후자였다.
 
김씨를 잡아간 경찰은 "납북됐다가 돌아온 신명구씨에게 북한 얘기를 뭐라고 들었나"고 물었다. 김씨는 신명구씨에게 북한 얘기를 들은 것도 없고, 신씨와도 얼굴만 아는 사이었지만 경찰의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해 거짓으로 잘못을 시인했다. 그런 그에게 국가는 반국가단체를 찬양하고 고무했다는 누명을 씌워 징역 1년 6개월,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3년의 선고를 내렸다.
 
 

피해자들 50년만에 억울함 해소하지만…故김정구씨는 '재심 기각'

지난해 4월 3일, 재심을 통해 50여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은 신명구씨를 축하는 시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이러한 김씨의 억울함은 최근 납북귀환어부 간첩 조작사건을 진실 규명한 진실화해위원회와 일부 피해자들의 재심을 통해 해소될 기미가 보였다. 김씨에게 북한에서의 일화를 전했다는 신명구씨가 지난 2025년 4월 23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김씨와 함께 기소된 신충관씨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아 50년 만에 억울함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이 김씨의 재심 청구를 한 차례 기각하면서 기대는 무산됐다. 전주지법은 "불법 구금과 고문을 했다는 증거가 없기에 재심 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검찰 의견을 받아들여 김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그의 법률 대리인 최정규 변호사가 두 번째 재심을 청구했지만, 검찰은 이번에도 "한 차례 기각된 바가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두 번째 재심 청구도 기각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기각 요청 의견서를 낸 상태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상 규명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제3기 진실화해위원회는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을 위원회의 1기 직권조사 사안으로 결정했지만, 여기에 故김정구씨 등 불고지죄로 연루된 이들은 진실 규명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박영일 진실화해위원회 전문위원은 "김씨와 같은 사례는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는 이상 진실 규명이 어렵다"며 "이번 직권 조사도 납북된 어부 당사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유족이나 이 사실을 아는 누군가 신청을 해야만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속 당시 영장 보면 '불법 구금' 명백…변호인 "누명 벗을 기회 주어져야"

김정구씨 구속 당시 발부된 영장. 최정규 변호사는 10월 19일 체포된 김정구씨의 영장이 10월 22일 군산경찰서 정보과 대공계에서 집행된 것을 두고 19일부터 22일까지는 불법구금됐다고 주장한다. 최정규 변호사 제공

검찰의 두 번째 '기각'을 두고 최 변호사는 "납북 당사자인 신명구씨는 무죄를 받아 억울함을 해소했는데, 사건과 연루된 김정구씨가 재심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는게 말이 되냐"며 "이것이 과연 공익의 수호자인 검찰의 역할인지 의문이다"고 비판했다.
 
최정규 변호사는 "김정구 씨의 불법 구금의 정황이 분명히 확인됨에도 법원이 기계적으로 판단했다"고 말한다. 근거는 경찰과 법원이 남긴 기록이다. 1976년 10월 19일 전북 군산경찰서가 김정구 씨를 체포하며 작성한 범죄인지보고서엔 김정구 씨의 신상 아래 (동행) 표시가 되어있다. 체포 후 사흘 뒤인 1976년 10월 22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이 발부한 김씨의 구속영장엔 영장 집행 장소가 '군산경찰서 정보과 대공계'로 적혀있다.
 
최 변호사는 "19일에 체포된 후 구금 없이 집에 보냈다면 22일 영장 집행 장소가 군산경찰서 정보계가 아니라 집이었어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사법을 집에 보냈을리는 만무하니 체포된 19일부터 영장이 발부된 22일까지는 김씨는 불법 구금됐다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구씨의 사건을 두고 검찰이 재차 기각 의견을 낸 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며 "진실화해위원회 직권조사 대상에서도 김정구씨가 빠진 게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앞서 고(故) 김정구씨의 아내 박선례 씨는 "아빠가 빨갱이란 이유로 우리 아들딸은 좋은 곳 취업해도 금방 나왔고 아저씨도 평생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다 억울하게 가셨다"며 "재심이나 진실규명 등으로 우리 가족이 평생 짊어졌던 한이 해소됐음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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