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전세의 소멸'…세입자들 험난한 앞길

황진환 기자

'전세의 소멸'은 이미 현실화 되고 있다. 올해 들어 다주택자 규제와 강력한 실거주 유도 정책은 전세의 소멸을 더욱 가속화 시키고 있다. 문제는 사라지는 전세에 세들어 살았던 사람들이다. 당장 계약이 끝나면 새로운 집을 알아봐야 하지만 빈집을 찾을 수 없다. 전세가 소멸되면서 월세가격 역시 빠르게 오르고 있고, 주거불안을 느낀 세입자들은 대출이 최대한 허용되는 '싼 집' 구매에 나서면서 저렴한 매물의 가격이 급등하는 악순환이 시작되고 있다.

 데이터가 말하는 서울·수도권 전세 대란

서울·수도권의 '전세대란'은 심각한 수준이다. 모든 부동산 관련 데이터는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공개한 9월 2주차(14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누적 상승률은 7.79%로 지난해 같은 기간(1.66%)의 약 4.7배로 뛰었다. 경기지역 누적 상승률은 5.33%로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0.61%)의 무려 8.7배에 달한다. 올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누적 상승률은 전세난이 극심했던 2015년(10.7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세가격 역시 역대급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2026년 8월 기준 6억 3663만원으로 통계 집계 시작 시점인 2012년 1월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가격 급등은 수도권만의 현상이 아니다. 지방 전세가격 누적상승률은 이미 1.56%까지 올랐다. 지난해는 같은 기간 0.21% 하락했었다.
 
현재까지 서울 전세가격의 가파른 상승세는 외곽지역이 이끌고 있다. 성북구가 올해 12.84% 올라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높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누적상승률(0.63%)와 비교하면 20배가 넘게 올랐다. 노원구(12.25%), 성동구(10.07%), 도봉구(9.94%), 강북구(9.88%)가 뒤를 이었다. 강남구(2.42%)와 서초구(4.53%)의 상승 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KB부동산 지표도 크게 다르지 않다. 'KB주택시장 리뷰 9월호'에 따르면 8월 서울 주택 전세가격은 전월보다 0.68% 올랐고, KB전세가격전망지수(수도권 129.7)와 전세수급지수(수도권 180.1)는 모두 전월보다 높아졌다. 두 지수는 100을 넘을수록 가격 상승 전망과 공급 부족이 크다는 뜻이다. 전세를 구하지 못한 수요가 월세로 넘어가면서 수도권 아파트 월세가격지수도 한 달 새 1.3% 올랐다. 7월 전국 아파트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 비중은 52.4%로 절반을 넘었다.
 

대통령 예언이 현실로… 급속도로 사라지는 전세

서울 전세가격 폭등의 가장 큰 원인은 공급 부족을 꼽을 수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2만5281가구로 지난해(3만7103가구)보다 31.9% 줄었다. 한국부동산원과 부동산R114가 집계한 내년 입주 예정 물량은 1만7197호로 더 줄어들 예정이다, 업계가 보는 적정 수요(연 4만5천호 안팎)의 3분의 1 수준이다. 아파트의 대체재인 비아파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 오피스텔 입주 물량은 올해 1700실로 지난해(4122실)보다 58.8% 줄었다.
 
여기에 정부의 실거주 중심 정책이 더해지면서 전세물량은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폐지를 선언하면서 많은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처분해 임대 물량이 감소했다.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갭투자가 막힌 데다, 비거주 주택의 세 부담을 높이는 세제개편안이 나오면서 집주인들은 세를 놓는 대신 직접 들어가 살거나 집을 파는 쪽을 택하고 있다. 임대차 시장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빈집'이 있어야 하는데 실거주가 확산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물이 급감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년 기자회견에서 "(전세제도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특이한 제도인데 일종의 사금융"이라며 "이제는 사라져가는 추세"라고 한 발언이 현실화 된 것이다.
 
전세가격도 오르지만 집값이 더 빠르게 오르면서 주거 사다리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KB부동산이 공개한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16억739만 원)과 평균 전세가격(7억1178만원)의 차이는 8억9561만 원으로, 5년 전(5억3389만 원)보다 3억6천만 원 넘게 벌어졌다. 전세에서 자기집 마련으로 갈아타기가 훨씬 어려워지면서 전세수요가 좀처럼 줄지 않는 것도 가격 폭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제공

좀처럼 보이지 않는 해법

서울 전세대란은 데이터 보다 현실에서 더욱 가혹하다. 3천 세대가 넘는 노원구 상계동 대단지에서 전세 매물이 한두 건에 그치는 등 특히 강북에서 전세 가뭄 현상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물이 나오면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금부터 보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대표는 "현장에서 전세는 거의 없다. 어떤 통계에 보면 전세 매물이 늘어났다고 하는데 현장에서는 느낄 수가 없다. 강남은 그나마 입주 물량이 있는데 강북은 물량이 없어서 특히 더 심각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한강벨트의 전유물이던 '국평 10억 전세'가 강북 외곽으로까지 확산됐다. 성북구 길음동 롯데캐슬클라시아 전용 84㎡는 지난달 15일 11억 원에 신규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동대문구 용두동 청량리역한양수자인그라시엘 같은 면적은 지난달 30일 10억 원에 계약돼, 지난해 11월 8억 원대 초반이던 가격이 1년도 안 돼 2억 원 가까이 뛰었다. 강북구 미아동 한화포레나미아 전용 84㎡의 전세 호가는 12억 원까지 올랐고, 입주 30년이 넘은 노원구 중계동 건영3차 84㎡도 이달 11일 9억1천만 원에 신규 계약됐다.
 
문제는 무주택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전세가격을 안정시킬 뾰족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오히려 내녀부터 서울의 대단지 재개발이 이어지면서 임대차 시장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에게 제출한 '2026~2030년 정비사업 이주 예정 물량 현황'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서울 207개 정비사업장에서 총 17만9310채가 이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2028년에는 4만5256세대가 이주할 예정이어서 서울 임대시장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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