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싸우기로 한 거예요."
"한쪽만 때린 게 아니에요." "둘 다 동의했어요." "그냥 장난이었어요."
학교에서 벌어진 싸움을 두고 아이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서로 주먹을 휘둘렀고 처음부터 싸우기로 했으니, 폭력이라기보다 친구들끼리의 장난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확인해야 할 질문이 있다. 두 아이가 정말 같은 마음으로 싸움을 원했을까?
겉으로는 서로 동의한 것처럼 보여도 친구들의 시선이 두렵거나 겁쟁이로 보이기 싫어 마지못해 참여한 아이가 있을 수 있다. 아이들이 말하는 '동의'가 언제나 자유로운 선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야차룰'이라는 이름으로 보호장비나 안전 규칙 없이 싸우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장난이나 격투 놀이처럼 시작하더라도, 친구들이 둘러서서 부추기고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싸움은 구경거리가 되고, 영상은 싸움이 끝난 뒤에도 아이를 괴롭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싫다"고 말하지 못한 아이
다음은 또래의 압박 속에서 벌어진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중학교 3학년 교실의 쉬는 시간. 몇몇 학생이 교실 뒤쪽에 모여 있었다. 한 학생이 A학생에게 말했다. "야, 너 B랑 한번 붙어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기냐?" "야차룰로 해봐."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A학생은 웃으며 거절했다. "싫어. 안 해." 그러자 "왜, 무서워?" "쫄았냐?"라는 말이 돌아왔다. B학생도 "그냥 한번 해보자"고 했다. A학생은 다시 거절하지 못했다.
두 학생이 마주 서자 친구들이 원을 그리듯 둘러섰다. 처음에는 서로 밀치며 웃었다. 하지만 한 학생의 주먹이 상대의 얼굴에 닿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상대도 주먹을 휘둘렀고, 주변에서는 "제대로 해!", "한 번 더!"라는 소리가 나왔다. 누군가는 계속 촬영했다. 싸움이 끝난 뒤 A학생은 영상을 찍은 친구에게 말했다. "그거 지워줘. 다른 애들한테 보내지 마." 친구는 웃으며 대답했다. "왜? 재밌는데. 단톡방에 올릴까?"
A학생에게는 싸움이 끝난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B학생과 맞서는 일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자신의 모습이 친구들에게 퍼질까 봐 불안했다. 몇 분 동안 벌어진 일이 휴대전화 속 영상으로 남아, 언제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지 모르게 된 것이다.
동의했다는 말만으로 충분할까
우리는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중학생에게 또래의 시선은 결코 가볍지 않다. 거절했다가 겁쟁이라고 놀림받거나 친구들 사이에서 밀려날까 두려울 수 있다. 상대가 자신보다 힘이 세거나 주변에서 영향력이 큰 아이라면 거절은 더 어려워진다.
따라서 두 아이가 모두 주먹을 휘둘렀다는 사실만으로, 둘 다 자유롭게 싸움을 선택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먼저 거절한 적은 없는지, 주변에서 부추기거나 조롱하지는 않았는지,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는 분위기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촬영 역시 별개의 문제다. 싸움에 참여했다는 것이 촬영이나 공유까지 허락했다는 뜻은 아니다. 영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면 당사자가 삭제를 요청해도 어디까지 퍼졌는지 알기 어렵다. 아이에게는 맞았던 순간보다 그 장면이 반복해서 보여지고 조롱받을 수 있다는 걱정이 더 오래 남을 수도 있다.
싸움에는 두 당사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둘러서서 웃고, 더 싸우라고 외치고, 영상을 찍는 친구들도 있다. 현장에서 끝날 수 있었던 일이 촬영과 공유를 통해 교실 밖으로 퍼진다. 현장에 없던 아이들까지 관객이 되는 것이다.
또래의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 큰 시기에 친구들의 환호나 영상에 달린 반응은 강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처음에는 재미로 찍었더라도, 싸움을 구경하고 공유하는 일이 반복되면 누군가의 두려움과 고통을 놀이처럼 여기게 될 위험이 있다.
'야차룰'이라는 이름도 경계해야 한다. 이름에 '룰'이 붙었다고 해서 안전한 경기나 놀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원하지 않는 아이를 압박해 참여하게 하고, 싸우는 모습을 촬영해 퍼뜨리거나 조롱한다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단순한 장난으로 넘길 수 없다.
사람은 집단에서 배제되지 않으려고 주변의 행동과 의견에 맞추기도 한다. 이를 동조심리(Conformity)라고 한다. 청소년기에 또래 관계가 중요한 만큼 "나만 빠지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거절하면 겁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둘 다 동의했다'는 말의 앞뒤를 살펴야 한다.
이승환 경감의 조언
아이들의 싸움을 알게 됐다면 어른은 누가 먼저 때렸는지만 물어서는 안 된다. 누가 싸움을 제안했는지, 거절할 기회가 있었는지, 주변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촬영된 영상은 어디까지 공유됐는지 차분히 확인해야 한다. 아이가 처음에 "괜찮다"고 말했더라도 두려움이나 또래의 압박 때문에 속마음을 숨겼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도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싸움을 거절하는 것은 겁쟁이의 행동이 아니다. 친구와 싸우기로 했다는 말도 서로를 때려도 된다는 허락이 될 수 없다. 옆에서 부추기거나 촬영하는 행동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싸움은 몇 분이면 끝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의 공포와 수치심, 휴대전화에 남은 영상은 아이의 마음에 훨씬 오래 남는다. 아이가 "싫어"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존중하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어른이 응답해야 한다. 또래의 시선 앞에서도 싸움을 거절할 수 있도록, 그 용기를 지켜주는 학교와 사회가 필요하다.
이승환 경감(경찰청 치안정보국), '사기 프로파일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