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산업재해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재외동포(F-4) 비자 소지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로 숨진 외국인 노동자 3명 중 1명도 F-4 비자 소지자였다.
입국 전후 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는 고용허가제(E-9) 노동자보다 재해자와 사망자가 모두 많지만, F-4 노동자는 별도의 의무교육 없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28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비자 종류별 외국인 노동자 산업재해조사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조사표가 접수된 외국인 노동자는 재해자 7271명과 사망자 112명 등 모두 7383명으로 집계됐다.
체류자격별로는 F-4가 2217명(30.0%)으로 가장 많았다. 비전문취업(E-9) 1776명(24.1%), 영주(F-5) 893명(12.1%), 기타(G-1) 680명(9.2%) 순이었다.
사망자만 놓고 보면 F-4 비중은 더 높았다. 지난해 산재로 숨진 외국인 노동자 112명 가운데 35명(31.3%)이 F-4 비자 소지자였다. G-1 22명(19.6%), E-9 21명(18.8%), F-5 9명(8.0%)이 뒤를 이었다.
산업재해조사표는 사업주가 직접 작성해 제출하는 자료다. 현행법상 사업주는 산재보험 적용 여부와 관계없이 사망 또는 3일 이상 휴업이 필요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1개월 안에 관할 노동청에 조사표를 제출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 심사를 거쳐 확정되는 산재보험 승인 통계와는 수치가 다를 수 있다. 다만 승인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사고 발생 단계에서 집계되는 만큼 현장의 산재 발생 상황을 보다 빠르게 보여준다.
재외동포의 높은 산재 비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체류자격이 기재된 외국인 산재를 분석한 결과 F-4는 한 해도 빠짐없이 재해자와 사망자 모두 가장 많았다.
F-4 재해자는 2021년 859명에서 지난해 2182명으로 2.5배로 늘었다. 사망자도 같은 기간 9명에서 35명으로 증가했다. 이 수치는 전산 입력 기준으로, 지난해 전체 산업재해조사표 집계와는 차이가 있다.
올해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1분기까지 접수된 외국인 노동자 산재는 재해 4851명, 사망 71명이다. 재해자 가운데 F-4가 1387명(28.6%)으로 가장 많았고 E-9 1088명, F-5 712명 순이었다.
F-4 비자는 과거 한국 국적을 보유했거나 부모·조부모가 한국 국적을 보유했던 사람에게 발급되는 '동포 비자'다. 지난해 기준 국내 체류 인원은 55만6288명으로, 중국 국적이 38만7187명으로 가장 많다.
F-4 노동자의 산재가 많은 배경 중 하나로는 위험도가 높은 건설업 취업이 꼽힌다. F-4는 다른 취업 비자와 달리 취업활동 제한이 상대적으로 적어 건설업에도 취업할 수 있다.
지난해 건설업에서 산재를 당한 F-4 노동자는 583명으로 E-9 노동자 67명의 8.7배에 달했다. 역시 취업 제한이 없는 F-5 노동자의 건설업 산재도 247명이었다.
영세 사업장 집중도 두드러졌다. 지난해 F-4와 E-9 재해자 3993명 가운데 72.4%인 2893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다 다쳤다. 5인 미만 사업장 재해자도 743명으로 18.6%를 차지했다.
문제는 산재 위험이 높은 현장에서 일하는 F-4 노동자들이 별도의 의무 안전교육 없이 곧바로 현장에 투입된다는 점이다.
E-9 노동자는 입국 전 산업안전 교육을 포함해 47시간 이상 교육을 받고, 입국 후에도 16시간의 취업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한다. 반면 F-4 노동자에게는 이런 별도 교육 절차가 없다.
사업주의 안전보건교육 의무는 있지만 실시 여부가 별도의 보고 대상이 아니어서 실제 이행 여부를 일률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노동부도 "E-9 외 비자에 대해서는 교육 현황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사실상 '외국인'과 '동포'의 경계에 있는 F-4 노동자가 외국인 대상 안전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2024년 6월 23명이 숨진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에서도 같은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외국인 사망자 18명 가운데 11명이 F-4 비자 소지자였다.
제도는 내년부터 바뀐다. 국회는 지난 6월 비자 종류와 관계없이 외국인 노동자가 기초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하도록 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법은 내년 1월 8일부터 시행된다.
노동부도 지난 23일 교육 대상을 구체화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고용허가제 노동자뿐 아니라 F-4를 비롯해 취업활동 제한을 받지 않는 거주(F-2)·영주(F-5)·결혼이민(F-6) 비자와 단기취업(C-4)·특정활동(E-7)·계절근로(E-8)·관광취업(H-1) 비자 소지자를 기초안전보건교육 대상에 포함했다.
사업주가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면서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지 않으면 노동자 1명당 최대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1차 위반 10만원, 2차 20만원, 3차 이상 50만원이다.
함께 입법예고된 시행규칙 개정안에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3시간 이상 교육을 실시하되 취업교육 등 유사한 안전교육을 이미 이수한 경우 면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입법예고 기간은 오는 11월 2일까지다.
이용우 의원은 "외국인 노동자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안전보건교육 대상에 E-9 비자뿐만 아니라 실제 산재 위험도가 높은 비자 유형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며 "고용노동부는 다가오는 개정법 시행에 맞춰 사각지대가 없도록 시행령을 꼼꼼히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