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뉴욕에서 멕시코로…한국 외교, 120년 인연을 미래로 잇다

이재명 대통령, 유엔 기조연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순방은 뉴욕 유엔본부에서 시작해 멕시코시티 국립궁전(Palacio Nacional)에서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뉴욕이 한국 외교의 방향을 국제사회에 제시한 무대였다면, 멕시코는 그것을 경제와 산업, 공급망과 미래 기술의 협력으로 구체화한 현장이었다.
 
유엔총회 연설의 의미부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공존의 청사진과 함께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한 유엔의 역할과 한국의 기여를 제시했다. 이는 한국 외교가 한반도 문제에 머물지 않고 다자주의와 국제질서 형성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준 것이다. 뉴욕에서 제시한 이러한 '책임 있는 중견국 외교'가 멕시코에서는 실질적인 양자협력으로 연결됐다.
 
이재명 대통령, 한-멕시코 비즈니스 포럼 축사. 연합뉴스

그 의미는 양국 관계의 시간을 되짚어보면 더욱 분명하다. 한국과 멕시코의 인연은 1905년 1033명의 한인이 유카탄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1962년 수교했고, 2005년에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했다. 그리고 2026년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16년 만의 멕시코 국빈 방문이 이뤄졌다. 이 대통령이 첫 일정으로 차풀테펙 공원의 애국영웅탑을 찾아 헌화한 것도 이러한 역사적 관계에 대한 존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20년 전 이민자들이 놓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은 오늘날 문화의 교류로도 이어지고 있다. 멕시코의 젊은 세대가 케이(K)-pop과 K-food를 통해 한국을 만나고, 한국에서도 멕시코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이 넓어지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화·교육과 청년 교류가 협력 의제로 다뤄진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양국 관계의 기반도 그만큼 깊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경제협력의 제도화다. 7년간 이어온 투자보장협정 개정 협상의 쟁점을 타결하고 양국 수출입은행 간 1억 달러 규모의 전대금융을 신설했다.
 
특히 양 정상은 무역협정 체결 필요성에 공감하고 공동이익연구를 추진하기로 했다. 2000년대 이후 진전을 이루지 못했던 한·멕시코 자유무역협정(FT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논의를 다시 움직일 제도적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멕시코가 미국·캐나다·멕시코 무역협정(USMCA) 재검토라는 변수를 안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CEPA가 현실화된다면 양국 관계는 투자 중심의 협력을 넘어 무역·투자·공급망을 포괄하는 경제동반자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협력의 내용도 달라졌다. 자동차와 가전 중심에서 인공지능(AI)·디지털, 우주·항공우주, 방산으로 외연이 넓어졌다. 양국은 'AI 협력 선언'을 채택하고 우주 분야 실무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방산에서는 국방협력 업무협약(MOU)을 토대로 교육·훈련과 연구개발 협력을 확대하고, 한국 방산이 멕시코의 군 현대화에 기여할 가능성도 열었다. 이는 한국의 기술·제조 역량과 셰인바움 정부의 '플랜 멕시코(Plan México)'를 연결하는 새로운 산업 협력의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번 순방의 성과는 16건의 MOU와 AI 협력 선언이라는 숫자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뉴욕에서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제시했고, 멕시코에서는 누구와 무엇을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내놓았다. 다자외교의 비전을 경제안보와 산업외교의 실행으로 연결한 셈이다.
 
120여 년 전 태평양을 건넌 한인들의 이주로 시작된 양국 관계는 이제 사람의 인연을 넘어 무역과 공급망, AI와 우주, 방산과 인재를 함께 연결하는 관계로 이동하고 있다. 그 사이에는 음악과 음식, 문화와 교육을 통해 서로를 더 가깝게 느끼게 된 두 나라의 사람들이 있다. 기술과 자본이 협력의 속도를 높인다면, 문화와 사람의 교류는 그 관계를 지속시키는 힘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그 오랜 인연을 미래산업의 동반자 관계로 전환하는 하나의 분기점이다. 뉴욕에서 멕시코로 이어진 이번 순방이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120년 전 태평양은 두 나라를 갈라놓은 거리였지만, 이제 그 태평양은 한국과 멕시코의 미래를 연결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하상섭 국립외교원 전략지역연구부(중남미지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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