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콘텐츠 제작비와 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비용 절감만으로는 K-콘텐츠의 경쟁력을 지키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다. 제작사가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고, AI 활용 과정에서 창작자의 권리와 기여를 인정하는 기준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은경 클레이픽쳐스 대표 겸 한국AI드라마크리에이터협회장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2026 콘텐츠미래포럼'에서 'AI가 재편하는 K-콘텐츠 제작 생태계의 명과 암'을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첫 발표자로 나선 최 대표는 AI가 실험 단계를 넘어 실제 제작 현장에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넷플릭스는 올해 약 300편의 영화·시리즈 제작 과정에 생성형 AI를 활용했다고 밝혔고, 국내 방송사와 제작사도 드라마와 뉴스, 후반작업 등에 AI를 적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쟁점은 'AI를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규칙으로 쓸 것인가'"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자신이 제작한 100% AI 시리즈 드라마 '더 퀸'(THE QUEEN)을 사례로 들었다. 카메라와 배우, 세트, 로케이션 없이 제작진 3명이 기획부터 완성까지 만든 작품이다. AI를 활용하면 소규모 제작진도 기존 방식으로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규모의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AI를 제작비 절감 수단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제작비가 내려가도 IP를 갖지 못하면 우리는 더 싸게 만드는 하청이 될 뿐"이라며 "AI는 비용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다시 만들게 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AI로 아낀 비용이 새로운 작품과 장르, 자체 IP 개발로 이어지고, 이를 다시 음악·공연·게임·굿즈와 해외 시장으로 넓혀야 산업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사례로 들었다.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세계적으로 성공하더라도 유통·프랜차이즈 권리가 해외 플랫폼에 있으면, 흥행 규모가 커질수록 관련 수익도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국내 플랫폼의 경쟁력 문제도 함께 짚으며 "AI로 더 많이 만들어도 파는 창구가 남의 것이면 수익은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AI 확산에 따른 부작용도 거론했다.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를 동의 없이 디지털로 복제하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반복적인 채색·배경 작업과 초벌 번역 등이 자동화되면서 신인이 현장에서 경험을 쌓던 경력 경로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학습 데이터와 창작자 보상 기준도 아직 뚜렷하지 않다고 봤다. 특히 영상 분야에서는 사람이 기획과 선택, 연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기록하고 계약에 반영할 공통 기준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앞으로 K-콘텐츠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과제로 △IP를 보유하는 제작 구조 △미디어 특화 AI 모델과 데이터 인프라 △AI 활용의 표시·동의·인간 기여 인정 기준을 꼽았다.
정책 과제로는 AI 도구 사용료 등을 영상콘텐츠 제작비 세액공제 대상에 명시하고, 중소 제작사와 개인 창작자를 위한 AI 제작 바우처를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디어 특화 공동 모델과 아카이브 구축, IP 보유형 제작 지원, AI 더빙·자막 등 글로벌 현지화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창작자 보호 방안으로는 초상과 음성을 AI로 복제할 때 사용 기간과 보상, 철회권을 표준계약에 담고, 기존 제작 인력의 재교육과 신인 진입 경로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 대표는 "다음 경쟁력은 '싼 제작'이 아니라 IP·기술·신뢰"라며 "지원이 산업을 살리고, 규칙이 그 산업을 오래가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방송사도, 플랫폼도, 제작사도 힘들다. 버티는 것만으로는 회복되지 않는다"며 "AI는 다시 만들게 하는 기술이고, 제도는 그 이익이 남게 하는 장치"라고 강조했다.
'AI와 K-컬처 콘텐츠의 융합,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묻다'를 주제로 최 대표에 이어 이준성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 교수가 AI와 스포츠 콘텐츠의 변화를, 오성택 WSC Sports 한국 사업 책임자가 스포츠 미디어와 스토리텔링의 진화를 주제로 발표했다. 종합토론에서는 한규훈 숙명여대 홍보광고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아 K-컬처와 AI 산업의 상생 방안을 논의했다.
이재정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과 CBS M&C·노컷뉴스가 공동 주최한 이날 포럼에는 정·관계와 문화·연예·스포츠 산업계, 학계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나이영 CBS 사장의 개회사와 이재정 위원장의 환영사에 이어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축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