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공격로 앞에 지뢰를 매설할 사람은 없다."
마이클 보잭 전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부비서장은 지난 6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내 국경선 작업이 정전협정 위반은 아니라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사실 지뢰는 본질상 방어무기다. 적이 아군을 쉽게 침범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장애물이다.
예외는 있다. 북한도 결국 인정한 2015년 목함지뢰가 대표적. 군사분계선(MDL)을 수백m 지난 지점의 우리 장병들이 드나드는 통문에서 지뢰가 터졌으니 공격 의도가 분명했다.
그러나 지난 21일 MDL 이남 10여m에서 폭발한 지뢰 같은 경우는 애매하다. MDL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선이기 때문에 이 정도 거리라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장은 지난 달 30일 "우리 군인들은 단 한 번도 국경선을 넘은 적이 없다"고 반발하며 "(한국군의) 자작광대극"이라고 비난했다.
정전협정 부속지도 바탕으로 남·북·유엔사 제각각 해석
MDL은 버전이 4개나 된다. 1953년 정전협정 부속지도 원본이 존재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남과 북, 유엔사까지 각자 해석하는 경계선이 다르다.
5만분의 1 축적지도에서 MDL을 1mm 굵기로 그렸을 경우, 현실에선 경계선 자체의 폭만 50m가 된다. 남북 10m 정도의 오르내림은 오차범위 축에도 끼지 못할 수 있다.
위성항법장치(GPS) 같은 게 없던 시절에는 말할 나위가 없다. 할 수 없이 248km 휴전선(MDL)을 따라 1292개의 표지판을 세우고 눈대중으로 경계를 정했다.
그나마 1973년 남북 간 충돌로 표지판 유지·보수가 중단되면서 현재 200여개로 줄어들었다. 울퉁불퉁한 야전 지형에서 표지판 간격이 1km 이상 떨어져 있다면 분쟁이 없는 게 이상하다.
어떻게든 MDL에 대한 합의된 기준선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언제고 제2·제3의 DMZ 지뢰폭발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군과 유엔사 간 MDL 위치값이 불합치하는 것만도 약 60%에 이른다. 러시아 위성항법체계(글로나스)를 사용하는 북한과의 차이는 아직 가늠조차 못한다.
일단 한·유엔사 간에는 지난해 9월 부분적이나마 합의가 이뤄졌다. 급한 대로 북한군의 MDL 월선을 판단하는 경우에는 양측 기준 중 더 남쪽의 것을 택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이어 지난해 11월 북한에도 MDL 기준선 설정을 위한 군사회담을 제안했다. 예상된 반응이지만 북한은 묵묵부답하고 있다.
여기에는 북한의 대남 적대 노선뿐만 아니라 정전협정 체제 무력화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이 회담에 응하는 것은 정전협정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하지만 북한으로서도 경계선을 명확히 확정하는 게 '적대적 2국가' 차원에서도 나쁠 게 없다. 실제로 북한은 MDL 자체는 수용하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이) 우리의 MDL을 침범했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북한에) 경고사격을 하면 (북한) 인원들이 다음에 올 때는 지도와 나침반 같은 것을 들고 와서 위치를 확인하고, 때에 따라서는 위치를 변경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유엔사도 제 역할 안 해…北 국경선화 등에선 韓과 이견
일각에선 유엔사의 미온적 태도를 지적한다. 정전협정 관리 임무와 DMZ 관할권을 행사함에도 정작 필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MDL 기준선만 하더라도 한국군과 협조해 진즉 처리했어야 할 문제였다.
한 예비역 장성은 "유엔사가 (MDL 같은) 이런 거 할 때는 뒤로 빠지고, DMZ 출입이라든가 우리가 뭘 하려고 하면 정전협정 내세우고 (막는다)"라고 말했다.
유엔사는 이번 지뢰 사고를 놓고도 우리 측과 미묘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합참은 폭발한 지뢰 2발과 미폭발 상태에서 식별된 2발까지 4발 모두를 북한군 지뢰로 확정했지만, 유엔사는 현장에서 증거를 확보한 1발 외에는 판정을 유보했다.
합참이 즉각 중단을 촉구한 '국경선 요새화'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도 없었다. 유엔사는 지난 6월 북한의 국경선 작업이 MDL 이북에서 이뤄지고 중화기 반입만 없다면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MDL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임시방편에 그칠 수 있다"며 "마침 강신철 국방부 장관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내기도 했으니 미국 측(유엔사)과 잘 협조해서 뭔가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