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된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대한민국 형사사법 체계가 72년 만에 대전환을 맞았다. 검찰청이 폐지되면서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고, 경찰·중수청·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이 수사를 담당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기관 간 중복수사나 사건 핑퐁, 고난도 수사에 대한 경찰의 전문성 부족, 일선 수사팀의 업무 부담 증가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수사기관 간 '사건 배당' 혼란 우려…중복수사·떠넘기기?
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형사소송법 체계에서 경찰은 일반 사건을 맡고 중수청은 부패·경제·방위사업·마약·내란·외환·사이버 등 7대 중대범죄를 담당한다.이에 따라 수사기관 사이의 사건 배당 문제가 제기된다.
다만 경찰도 중대범죄 사건을 수사할 수 있다. 실제 경찰은 그동안 시도경찰청 광역수사단과 금융범죄수사대 등을 통해 대형 사건을 수사해 왔다.
앞으로는 경찰이 해당 사건을 먼저 인지하면 수사에 착수한 뒤 중수청에 통보하게 된다. 중수청은 직접 수사를 맡아야 한다고 판단하면 이첩을 요구할 수 있고, 경찰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응해야 한다.
과거 검찰-경찰 체제에서는 수사기관 간 사건을 둘러싼 관할 조정이 필요했지만, 새 체계에서는 중대범죄에 대해 중수청이 이첩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문제는 '정당한 사유'의 범위를 둘러싼 해석이다. 경찰이 신속한 수사의 필요성 등을 이유로 이첩 요구를 거부할 경우 기관 간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12·3 비상계엄 당시에도 여러 수사기관이 동시에 수사에 나서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검찰과 경찰은 각각 특별수사본부와 특별수사단을 꾸려 수사에 착수했고, 공수처도 TF를 꾸려 검찰과 경찰에 사건 이첩을 요구했다.
사건의 성격이 모호한 경우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반 형사사건으로 인지한 사건에서 수사 과정에 중대범죄 혐의가 추가되거나 여러 범죄가 함께 확인될 경우 관할 판단이 모호해질 수 있다.
사건이 경찰과 공소청 사이를 오가면서 처리가 지연될 우려도 제기된다. 새 체계에서 검사는 공소제기 여부 결정이나 공소유지 등에 필요한 경우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보완수사 요구와 회신이 반복되면서 사건이 장기간 기관 사이를 오가는 '핑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혼란이 커지고 사건 처리도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중수청도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27년도 성과계획서'에서 공수처·경찰과의 관할 경합과 절차 이원화에 따른 수사 지연 가능성을 주요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고난도 수사 전문성 우려 + 일선 수사 인력 부담도
금융·증권 범죄와 가상자산 범죄, 국제·사이버범죄 등 전문성을 요하는 사건을 경찰이 신속하고 충실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중수청이 중대범죄를 담당하지만 인력이 충분히 충원되지 않은 만큼, 당분간 경찰도 일부 중대·복잡 사건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선거 관련 범죄나 정치인 관련 사건을 경찰이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을지를 둘러싼 우려도 나온다. 경찰은 무소속 김병기 의원의 자녀 대학 편입 비리, 취업 청탁 등 의혹 사건 수사를 1년 넘게 끌다 최근 신청한 구속영장마저 반려되면서 수사 의지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는 경찰 일선 수사 부서의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수사관 1인당 연평균 접수 사건은 2023년 110.4건에서 지난해 133.8건으로 2년 새 21.2% 늘었다.
여기에 검찰이 수사 중이던 사건 상당수도 경찰 등으로 넘어올 예정이다. 검찰 미제사건은 8월 기준 16만여 건에 달하지만, 경찰은 이 가운데 실제로 넘겨받을 사건 규모조차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물론 경찰도 늘어나는 수사 수요에 대비해 수사 인력 확충에 나섰다. 경찰은 올해 상반기 수사 인력 1907명을 보강했고, 하반기에도 약 2100명을 추가 배치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기동대 인력으로 보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수사 인력 증원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수사 경험이 많지 않은 인력이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경찰 간부는 "단순히 인력만 많이 투입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양질의 수사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투입된 인원을 교육하는 데 더 부담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청 소속 경찰도 "기존에는 검사의 지휘를 받았지만 이제는 경찰이 수사 단계에서 사건을 마무리해야 해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전문 인력의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비상대응체제 전환…"서장이 직접 챙긴다"
경찰은 새 형사사법 체계 시행에 맞춰 비상대응체제로 전환했다.경찰청은 전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 시도경찰청 수사차장·수사부장, 총경급 과장과 경찰서장 등 약 650명이 참석한 전국 경찰 수사 지휘관 회의를 열었다. 전국 서장급 이상 지휘관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2024년 8월 이후 약 2년 1개월 만이다.
이들은 현장 대응 방안을 점검하고 피해자 보호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체적으로 피해 신고 접수부터 조사와 사후 조치까지 수사 전(全)과정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절차를 강화하기로 했다.
또 피해자 등 사건관계인이 사건 처리 과정을 직접 확인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온라인 통지 범위를 넓히고, 수사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기로 했다.
사건 조작이나 은폐, 뇌물수수 등 중대 비위는 엄정하게 수사하고, 파면·해임 등 배제징계를 원칙으로 하기로 했다.
김 대행은 "새로운 형사사법체계 안착의 성패는 현장에 달려 있다"며 "제도 시행 초기에 현장에서 겪는 혼선과 애로사항은 경찰서장이 직접 챙겨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건 핑퐁으로 피해자의 권리구제가 지연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국민이 우려하는 부실·불공정 수사가 경찰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현장 지휘관들이 점검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