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주택 신속공급 기조에 발맞춰 주택 건설에서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모듈러 주택'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높은 공사비와 전통적인 현장 건설 방식에 맞춰진 낡은 규제가 산업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표준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과 통합발주 허용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3일 국토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월간국토' 2026년 9월호에 수록된 이윤상 연구위원의 '모듈러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한 정책 과제'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진단했다.
레고 블록처럼 조립 혁신 공법…공기 단축·친환경성 강점
모듈러 주택은 창호, 벽체, 전기배선, 배관, 욕실, 주방기구 등 주요 자재와 부품을 공장에서 박스 형태의 모듈로 미리 제작하는 주택을 말한다. 현장으로 운반해 레고 블록처럼 조립하고 설치하는 것이다. 주택법상으로는 주요 구조부를 공장에서 제작해 조립하는 '공업화주택'의 일환으로 분류된다.장점은 절대적인 공사 기간의 단축이다. 전통적인 습식 건설 현장에서는 작업이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모듈러 공법은 터파기나 기초공사 등 현장 작업과 모듈 제작이라는 공장 작업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어 신속한 주택 공급이 가능하다.
통제된 공장 내부에서 전문 인력이 정해진 공정에 따라 유닛을 제작하기 때문에 날씨나 작업자 숙련도에 따른 편차가 적다. 균질한 주택 품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장 작업이 최소화됨에 따라 건설 현장의 안전사고 발생 확률을 낮출 수 있다. 또 현장 주변의 소음과 분진 등 환경 민원을 줄이며 폐기물 재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친환경적 특성도 갖췄다.
공공주택 공급 확대 기대…전체 시장 비중은 미미
국내 모듈러 건축은 2003년 신기초등학교 증축 공사를 시작으로 초기에는 학교나 군 막사 등 소형 공공건축물 위주로 적용됐다. 이후 2014년 공릉 모듈러 희망하우징, 2017년 가양동 행복주택, 2019년 천안두정 행복주택 등 실증 사업을 거쳤다.
2020년대 들어서는 용인영덕 행복주택, 세종시 6-3생활권 행복주택 등 중고층 및 대단지로 진화하며 전통적 주택 공급 방식을 점차 대체해 나가고 있다.
국내 모듈러 주택 시장은 2003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36.9%라는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했다. 2030년에는 3.7조원 규모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모듈러 건설 시장 역시 2026년부터 2035년까지 연평균 6.6% 성장이 점쳐지는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 역시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통해 신규 매입임대주택 공급에 모듈러 주택을 활용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국토교통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을 통해 내년부터 2030년까지 2만 호의 모듈러 공공주택 발주 계획을 내놓았다. 경기주택도시공사(GH)도 2030년까지 1만 모듈을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대대적인 추진에도 불구하고 전체 주택 시장에서 모듈러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일반 건축물 대비 공사비 130% 육박…설계 표준화 필수
대표적인 제약 요인은 '낮은 경제성'이다. 현재 모듈러 주택의 건축비는 일반 철근콘크리트 구조 대비 130% 가량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공장 설비 등 막대한 초기 투자비가 투입돼야 하지만 국내 시장이 아직 대량 생산을 감당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표준화 수준이 낮은 것도 문제다. 사업 현장이나 모듈 제작업체별로 제각기 다른 설계와 생산 방식이 적용되고 있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윤상 연구위원은 "정부와 LH가 앞장서서 설계, 부품, 접합부 및 시공 공정 전반에 걸친 개방형 표준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바탕으로 표준 평면을 적용한 공공주택을 민간에 반복적으로 대량 발주함으로써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제작 단가를 낮추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리발주 등 현장 중심 건설 제도 혁신해야
제도적 장벽도 높다. 현행 공공공사 발주 방식에서는 전기, 정보통신, 소방시설공사의 '분리발주'가 의무화돼 있다. 공장 제조 단계에서 일괄적으로 설치할 수 있는 내부 설비조차 별도의 전문 업체가 현장에서 따로 작업해야 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이는 현장 시공을 최소화하려는 모듈러 공법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고 공사비 상승과 품질 저하를 야기한다. 이 때문에 모듈러 공공공사에 한정해서라도 통합발주가 가능하도록 예외 규정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듈러 주택 조립을 전담할 '전문건설업 업종'과 등록 기준도 없다. 역량을 갖춘 모듈러 주택 제작업체라 할지라도 기존 건설업 계약 구조에 억지로 끼워 맞춰 사업에 참여해야 하는 기형적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공업화주택 인정제도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장별 생산 및 품질 관리 역량을 통합 평가하는 새로운 인증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증 취득 시 인허가 절차 간소화, 금융 지원, 용적률 완화 등 파격적인 실질적 인센티브를 연계해 민간 참여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위원은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주택 발주와 설계 표준화, 발주 방식 개선 등 단기적 정책 과제 실행이 산업 성장의 결정적 마중물이 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공공 지원 없이도 민간 기업들이 스스로 기술 역량을 축적해 자생할 수 있는 민간 모듈러 주택 시장 생태계를 확립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