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홍콩 누아르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해 한국에도 익숙한 범죄 조직 삼합회가 사이버 범죄 쪽으로 눈을 돌리며 '진화'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일 보도했다.
한때 삼합회에 몸담았던 조직원과 경찰 관계자들은 영화 속 모습과 달리 의리가 아닌 철저히 돈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움직인다고 전했다.
중학교 때부터 삼합회에 가담한 제이슨(가명·26)은 삼합회의 핵심 조직에 가까워질수록 소위 '형제애'란 허상이고 사업이 세상의 전부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SCMP에 말했다.
그는 "암흑가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제이슨이 맡은 일은 채권 추심부터 자금 세탁을 위한 은행 계좌 확보까지 다양했다.
그는 조직 생활을 하며 다른 조직원들이 명령을 받고 기물을 파손할 때 겁을 먹고 도망치거나 핑계를 대며 길거리 싸움에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이런 영향으로 자신도 위험한 임무는 가급적 피해 다른 동료에게 넘기고 대신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겼다고 귀띔했다.
삼합회 조직원들은 영화를 통해 대중에 알려진 것처럼 '보스'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고 전 경찰 간부 그레고리 라우 탓컹은 말했다.
삼합회 관련 책을 낸 라우씨는 "수감된 조직원들이 '제발 저를 증인으로 불러주세요. 윗선에 대해 고발할게요'라며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서겠다고 줄을 섰다"고 말했다.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지난해 개정된 교도소법에 따라 면회가 제한되고 외부 음식 반입이 금지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라우씨는 "구금 중에도 외부 음식을 받을 수 있는 한 자신들의 보스가 여전히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고 잘못 생각하기 쉽다"고 말했다.
삼합회는 최근 10년 사이 유흥 관련 사업에서 화이트칼라 범죄와 사이버 범죄로 영역을 넓혔다. 홍콩 경찰 조직범죄 담당 조 아우영 경감은 "폭력적인 충돌과 유혈 사태는 사라졌다"며 "대신 지하 금융, 국경을 넘나드는 자금 세탁, 사이버 범죄와 같은 눈에 띄지 않는 범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경찰은 조직의 수입원 차단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자금 추적 수사와 자산 몰수 등을 집중했다.
삼합회 관련 범죄는 2022년 전년 대비 35% 증가한 2554건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1944건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예년보다 다소 높은 수준이다.
삼합회 모집 과정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뒷골목이나 축구장 등을 배회하며 신입 조직원을 물색했지만 지금은 소셜미디어(SNS)나 게임 채팅방 등에서 이뤄진다.
홍콩청년단체연합 청소년범죄예방센터의 마이클 렁 시우케이 감독관은 "요즘 삼합회는 마치 고용 알선업체 같다"며 "불법 업무별로 얼마를 지급할지 목록을 작성한다"고 전했다.
자금 세탁을 위해 실물 은행 카드를 빌려주는 사람에게는 1천 홍콩달러(약 17만3천원)를 지급하는 식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몇 시간씩 진행되던 입단식도 축소되거나 생략됐다. 전통적인 입단식에서는 피의 맹세를 하기 위해 종이 연꽃을 찢고 닭의 머리를 잘랐다. 또 규칙, 금기 사항, 처벌에 대한 서약도 해야 했다.
라우씨는 "지금은 닭 머리 대신 달걀을 자르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조직에 발을 들이는 것은 그만큼 쉬워졌지만, 그에 대한 대가가 여전히 작지 않다. 제이슨은 누군가에게 미행당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다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
그는 "편집증에 시달리게 된다"며 "누군가 또는 상대 조직원들이 내 집 위치를 알고 있을까 봐 걱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잠을 잘 때도 아주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깨곤 했다.
15살부터 마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그는 결국 삼합회에 마약값으로 4만 홍콩달러(약 692만원)를 빚지게 됐다. 그가 삼합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나타나면서였다.
부모 역할을 해줬던 할아버지의 사망 소식이 경종이 돼 그는 마약을 끊고 삼합회와의 관계도 정리한 뒤 학교로 돌아갔다.
삼합회는 중국계 조직범죄 집단의 총칭으로 홍콩에서 주로 사용되는 명칭이다. 중국 본토에서는 일반적으로 흑사회(黑社會)라고 부른다. 삼합회의 기원은 청나라를 전복하려 했던 한족 비밀결사인 홍문(洪門) 또는 천지회(天地會) 계열 조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나라 멸망 이후 일부 조직이 불법 활동에 가담하면서 삼합회로 이어졌다. 19세기 초 활동한 해적 장보채(張保仔)의 추종자들 역시 삼합회의 뿌리 중 하나로 거론된다.
홍콩의 대표적인 4대 삼합회 조직으로는 화승화(和勝和), 신의안(新義安), 14K, 화합도(和合圖)가 꼽힌다. 이 가운데 신의안과 14K는 국민당 계열 세력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