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도 돌아섰는데…서울의 '고쳐 쓸 권리'는 제자리걸음[기후로운 경제생활]

서울 내 수리사업 우후죽순…실효성은 그닥
유럽은 제조사에 수리 의무…애플도 선회
'수리 용이성 평가' 국정과제인데, 관련법은 계류중


◆ 홍종호> 자, 다음으로 알아볼 소식 말씀해 주세요.

◇ 양형욱> 고쳐 쓸 권리, 국정과제인데 제자리걸음. 교수님, 최근에 고장난 물건 고쳐 쓰신 적 있으실까요?

◆ 홍종호> 예, 저는 작년에 저희 아버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 입으셨던 양복 저보다 좀 덩치가 크셔서 약간 이렇게 수선해서 줄여서 입었는데요. 양복 줄이는 건 굉장히 수선비가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좀 많이 썼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나오더라고요.

◇ 양형욱> 그렇죠. 이게 또 사이즈를 줄이는 거니까.

◆ 홍종호> 사이즈 줄여서 양복 윗도리 이런 게 줄이는 게 쉽지 않대요. 그러면서 많이 청구하는데 또 아버지 유품이어서 제가 썼습니다.

유튜브 'CBS 경제연구실' 캡처

◇ 양형욱> 저는 고장난 물건을 고쳐 쓴 적이 거의 손에 꼽거든요. 청취자 분들 중에서도 저와 같은 분들이 많으실 거라고 짐작이 되는데요. 이 수리권, 수리할 권리 이미 꽤 들어본 분들도 계실 거고 처음 듣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 수리권은 소비자들이 고장난 물건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원하는 방식대로 고쳐 쓸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수리권이 몇 년 전부터 계속 주목받고 있는데요. 배경은 환경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해마다 충분히 쓸만한데 수리 없이 버려지는 물건들은 고스란히 쓰레기가 되잖아요. 사실 수리할 여건이 조성되지 않으면 물건을 잘 고쳐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울환경연합 등이 지난 5월 18일부터 6월 7일까지 서울 시민 158명에게 최근 1년간 수리 또는 수선을 포기한 경험이 있느냐 물었더니 81%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 홍종호> 아, 포기한 경험에 대해서.

◇ 양형욱> 네,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수리 또는 수선할 곳을 찾지 못해서였습니다. 25.8%가 이를 골랐고요. 가격이 비싸서는 21.6%, 부품이나 재료를 구할 수 없어서 20%, 수리를 원하는 제품과 관련된 서비스나 프로그램이 없어서 13.5%, 거리가 멀어서 8.6%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이 수리권을 지켜주고 조성하는 주체로 지목되어 왔고, 또 계속해서 나섰던 게 지자체들입니다. 현행법에서도 지자체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어요. 폐기물관리법은 시장과 군수, 구청장에게 관할 구역의 폐기물을 처리하고 이런 폐기물들이 덜 나오도록 노력할 책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2024년 한 해 서울 가정에서 나온 생활폐기물이 289만 톤인데, 서울 자치구들이 생활폐기물을 관리하는 데 쓴 돈이 약 1조 1400억 원입니다.그렇다면 폐기물이 덜 나오도록 동네 수리 기반을 만들어야 할 책임도 지자체에 있겠죠.

◆ 홍종호> 네, 그렇습니다. 이게 딱 말씀만 들어봐도 폐기물 관리한다는 것, 그게 이 수리를 통해서 다시 재이용할 수 있다면 그만큼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들이 적어지는 거니까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건 이것도 매립하거나 또 소각해야 되니까 다 사회적 비용이잖아요.

또 최근에는 함부로 저 수도권 매립지에 매립도 못해요, 요새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점점 처리 비용이 커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만약에 효과적으로 수리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서 또 뭔가 우리 시민들 입장에선 내가 환경에 기여하고 있다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고 사실은 이 수리권이라는 말이 신조어잖아요. 근데 이 환경 하는 분들은 수리권 하면 먼저 드는 거는 물 수 자 물을 이용할 권리, 이걸 수리권이라고 부르거든요. 지금도 쓰는 말이에요. 근데 여기서 수리는 고친다는 것이어서 제가 물어봤더니 젊은층은 수리권 하면 물 이용 이건 모르고 내가 갖고 있는 어떤 제품을 수리해서 쓸 수 있는 권리. 그래서 이 말도 굉장히 재미있고 잘 지은 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양형욱> 소리는 같은데 뜻은 다릅니다.

◆ 홍종호> 네, 다릅니다. 완전 다릅니다.

◇ 양형욱> 그런데 최근 서울환경연합과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가 시민조사단과 함께 서울 25개 자치구의 수리 환경을 점수로 매긴 고침 점수라는 걸 발표했습니다.

◆ 홍종호> 고침 점수.

◇ 양형욱> 자치구들이 수리 여건을 얼마나 갖췄는지 그 이행 실태를 파악해 본 거죠.

◆ 홍종호> 이 결과 어떻게 고침 점수 이것도 이거 우리말이 참 굉장히 듣기가 좋네요. 이거 어떻게 나왔습니까?

유튜브 'CBS 경제연구실' 캡처

◇ 양형욱> 100점 만점에 최고점은 마포구 73점. 최저점은 강서구 46.4점.

◆ 홍종호> 이게 구별로 상당히 차이가 나네요.

◇ 양형욱> 네. 26.6점 차이가 나는 거죠, 최고와 최저가. 25개 구 가운데 20곳이 50에서 60점대였고, 80점을 넘는 구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업 수만 놓고 보면요. 모든 곳이 적지는 않았습니다.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운영 중인 수리 사업은 모두 126개인데요.

자전거 수리센터는 자전거 이용을 늘리려는 교통 정책에서 장애인 보조기기 수리나 집수리는 복지사업으로, 칼갈이나 우산 수리는 자활센터나 공공일자리 사업으로 각각 생겨났습니다. 문제는 실효성인데요. 126개 가운데 주 5일 이상 문을 여는 상설 사업은 51개로 절반이 안 되고요. 자전거는 25개 구 모두 고칠 수 있지만 전자제품은 4개 구, 가구는 성동구 단 한 곳뿐입니다.

◆ 홍종호> 그러니까 소비자가 수리를 원해도 수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상당히 불비하다 이렇게 좀 들립니다. 고장 났을 때 바로 찾아가기 어려운 상황인 거죠. 자,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까?

◇ 양형욱> 네,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온라인으로 정보를 확인하고 예약까지 할 수 있는 구는 양천구 한 곳뿐이었고요. 19개 구는 홈페이지에 기본 정보는 올라와 있지만 예약이나 이용 가능 여부는 전화로 물어봐야 했고요. 강동, 강서, 금천, 노원, 중랑 다섯 개 구는 사업이 있다는 사실 정도만 온라인에서 확인됐습니다.

◆ 홍종호> 왜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이 되는 겁니까?

◇ 양형욱>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요. 부서별 칸막이가 있기 때문인데, 사업 성격에 따라 자원순환과, 교통행정과, 일자리경제과, 사회복지과 담당 부서가 제각각이다 보니까 흩어져 있는 사업들을 한데 묶어서 관리하는 자치구가 한 곳도 없었거든요. 수리 사업으로 쓰레기를 얼마나 줄였는지 따지는 자치구 역시 한 곳도 없었고요.

서울환경연합이 서울에는 수리 사업은 있지만 수리 정책은 없다고 꼬집은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 홍종호> 결국은 각 구청별로 이런 수리 사업을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수리정책과라든지 이런 걸 만들어서 좀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이런 게 필요하겠다 이런 생각이 들긴 합니다.

◇ 양형욱> 네. 그래서 이런 서울과 대조적인 곳이 오스트리아 빈인데요. 빈은 수리를 아예 쓰레기 줄이기 정책으로 설계했습니다. 2020년 가을부터 빈 수리 쿠폰 사업을 통해서 수리비의 50%를 최대 100유로, 우리 돈으로 16만 원 정도까지 지원했습니다.

◆ 홍종호> 수리 열심히 하라고.

◇ 양형욱> 네. 가구, 옷, 신발, 자전거까지 대상도 넓고요. 지금까지 5만 5800개가 넘는 물건을 고쳤고, 빈시는 이를 통해 이산화탄소 3209톤을 줄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오스트리아 정부도 전국 단위 수리 보너스 사업을 도입했습니다. 2025년 5월까지 약 170만 장의 수리 바우처가 쓰였고, 투입된 예산은 모두 2억 5400만 유로였습니다.

◆ 홍종호> 결국 빈시에서 이렇게 보조금을 직접적으로 제공했다는 것은 이러한 예산을 사용한 것 이상의 어떤 사회적 편익이 발생한다. 여기에 대한 자신이 있으니까 이렇게 시 예산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당연히 하게 됩니다. 저는 굉장히 좋은 사업이라고 여겨져요. 훨씬 더 수리할 수 있는, 다시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진작해 주는 이런 유인을 제공하잖아요.

문제는 이렇게 해서 너도 나도 수리하겠다 그러면은 이게 50%를 제공해 주니까 예산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양형욱> 맞습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에서 예산 문제가 불거졌어요. 현지 보도들을 보니까 기기 구조 보조금이 올해 말까지만 운영되고 내년에는 이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 홍종호> 부담 때문에.

◇ 양형욱> 예산이 절감돼요. 올해 9월 초까지 약 십이만 이천삼백삼천 장의 쿠폰이 쓰이고 참여 수리 업체도 전국 2400곳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도요.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이 수리 보조금 정책, 우리나라도 유효할까요?

◆ 홍종호> 사실은 우리나라가 급격히 경제성장하면서 소비 성향도 굉장히 높아졌고, 특히 이런 패스트 패션 옷 얼마 안 입고 버리고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옷이 어마어마하고요.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상위권이래요. 이 또 옷이 국내에서 처리가 안 돼서 해외로 수출을 해서 근데 그 나라에 가져가는데 그 나라에서도 입지 않는다고 합니다, 중고 옷을. 그래서 또 그 나라의 여러 이런 수입한 옷 무덤이 여기저기 있을 정도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에요. 그래서 저는 국내에서 이런 수리할 수 있는, 다시 재이용할 수 있는 이런 문화, 이런 걸 키우기 위한 정부 정책, 특히 빈시 같은 경우에는 직접 보조금을 제공한 건데요. 이런 것은 굉장히 시민들의 의식을 깨울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까 앞에서 아니, 수리하려고 했는데 여건이 불비해서 수리 못 받았다.

◇ 양형욱> 포기했는데.

◆ 홍종호> 포기했다 이런 경우도 있는데요. 물론 저는 그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이 수를 늘리기 위해서 이게 좀 매스가 늘어나야 그래도 정부도 관심을 가지고 아, 이거 좀 정책을 키워야 되겠다. 규모의 경제가 또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 차원에서는 그 출발점으로 '우리 구에서는 앞으로 수리하게 하면은 우리 보조금도 주고 또 최대한도로 수리할 수 있는 여러 각 품목별 이런 수리 시설도 잘 만들어 놓겠다'고 하면 결국 그게 어떤 구, 특정 구의 이미지 제고는 물론이고 궁극적으로는 예산도 절감할 수 있는. 왜냐하면 폐기물 처리 비용이 확연히 줄 거거든요. 이런 식의 어떤 목표를 세울 수 있는 혁신적인 구도 좀 나오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하게 되네요.

◇ 양형욱> 네, 그래서 최근에는 제조사의 수리 의무를 강화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EU는 2024년 수리권 지침이라는 걸 만들었고요. 올해 7월 말부터 회원국에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 홍종호> 네, 바로 이런 것이 정말 근본적인 해법이겠죠. 기업이 하는 거죠.

◇ 양형욱> 그렇죠. 수리권 지침에 따르면 세탁기, 냉장고, 휴대전화 등은 보증 기간이 끝나도 제조사가 합리적인 가격에 고쳐줘야 하고, 모든 회원국은 수리 바우처 같은 수리 촉진책을 최소 한 개 이상 도입해야 합니다. 2028년에는 유럽 공통 수리 플랫폼도 가동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 홍종호> 스마트폰 어떻게 보세요? 이게 우리 또 청년들 사이에서 스마트폰 이거 최신형으로 바꾸는 게 상당히 이것도 많이 하는 하나의 문화 아닙니까?

◇ 양형욱> 네, 얼리어답터 이런 말도 있고. 예, 그래서 그동안 가장 논란이 된 게 기업 애플이거든요. 애플이 오랫동안 미국 여러 주의 수리권 법안에 반대해 왔습니다. 소비자 안전과 보안이 위협받는다는 논리였는데요. 사설 수리점에서 정품이 아닌 부품으로 바꾸면 경고 메시지가 뜨거나 일부 기능이 제한되는 부품 페어링도 수리를 가로막는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애플이 2021년 소비자가 직접 부품을 사서 고칠 수 있는 자가 수리 프로그램을 내놨고, 2023년에는 제조사가 부품과 설명서, 수리 도구를 최대 7년간 제공하도록 한 캘리포니아주 수리권 법안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 홍종호> 예, 사실 우리나라의 확대 생산자 책임제라고 해서 폐기물을 특정 품목에 대해서는 기업이 책임지는 이런 정책도 시행을 이미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기업이 수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확대해 주는 방향으로 좀 기업이 움직여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우리 정부도 이런 쪽에 유인을 제공하고 있습니까?

◇ 양형욱> 네, 정부가 출범 직후 123개 국정과제를 발표했었잖아요. 그중 하나로 제품 수리 용이성 평가 제도화를 내걸었습니다. 이게 뭐냐면 제품이 얼마나 쉽게 고칠 수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도록 공식 기준을, 정부의 기준을 제도화하겠다는 취지인데요. 정부 출범 후 1년이 넘게 지났지만 후속 절차의 속도는 좀 더딘 편입니다. 작년 9월에 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이 순환경제사회법 개정안이라는 걸 냈어요. 근데 이 개정안이 현재까지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고요.

이 개정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 검토 보고서를 보니까 기후부는 시행 초기이니까 국내 이행 여건이 성숙한 뒤 과태료 같은 제재 수단과 등급제를 순차적으로 검토하자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정부의 국정과제를 뒷받침해 주는 법안인데 정부 스스로 속도 조절을 요청한 셈이죠.

◆ 홍종호> 예, 한번 이 수리 관련된 정책, 또 입법은 우리가 좀 관심을 갖고 예의주시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합니다. 자,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CBS 정책부 양형욱 기자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양형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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