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는 본인의 아이디어였다.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 시대 배경에 잘 어울릴 것으로 판단해 미팅 때 제안했고, 우민호 감독도 흔쾌히 받아들였단다. 배우 정성일이 선보인 청와대 비서실장 천석중의 인물 설정이다.
정성일은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양복을 갖춰 입고 무게감이 있는 역할이다 보니 고민이 많이 됐었죠. 당시 경상도 쪽에 많은 권력이 있었다 보니 사투리가 잘 맞을 것 같았어요.(웃음)"
그는 "고3때까지 대구에서 살았지만 어찌 됐든 긴 시간을 서울에 와서 살다 보니 뉘앙스 같은 게 달라졌더라"며 "시즌1 촬영 전에 대구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 물어보고 헷갈리는 부분이 있으면 촬영 전에 통화해서 많이 물어봤다"고 덧붙였다.
이어 "도와준 친구도 뿌듯해하더라"며 "고향 친구들이 전화하더니 내 대사를 따라 하기도 했다. 주로 욕하는 대사였다"고 웃었다.
정성일은 자신이 맡은 '2인자' 천석중에 대해 "자연적으로 주변에서 만들어준 권력"이라며 "뭔가 더 힘 있어 보이려고 하면 오히려 과해 보일 것 같았다.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밸런스를 잡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시대물이다 보니 조십스럽게 접근했다. 시즌1 때 모티브가 됐던 인물은 있었지만, 그 시대 안에 가장 허구의 인물은 천석중"이라며 "2인자라는 인물이 어떻게 살아남고 버텼을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즌1과 시즌2를 거치며 달라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2인자로서의 욕망이 드러나면서 서서히 망가져 가는 과정을 담아내려고 했다"며 "목소리로 불안함을 표현하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취조실 장면은 천석중의 불안이 극대화되는 순간이었다. 정성일은 "취조실에서 황대식(허정도)이 총을 겨누는데 정말 죽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잠깐만'이라는 그 호흡이 어떻게 보면 인간적으로 가장 솔직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턱 들어 올리며 2인자 그려…"변기 묻은 건 초코파이" 웃음
외적인 표현에도 의도적으로 변화를 줬다. 턱을 들어 올리는 동작을 통해 2인자라는 위치에서 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정성일은 "2인자지만 내 위에 단 1명밖에 없다는 자신감과 그 1명이 나를 전적으로 믿고 있다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시즌2에서 달라진 공간도 천석중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였다. 시즌1에서 천석중의 주요 공간이 안가였다면 시즌2에서는 청와대로 이동한다.
"시즌2에서도 처음에는 안가에서 촬영을 했었어요. 그러다 감독님이 촬영을 중단하고 청와대로 바꿨죠. 저는 그게 감독님의 신의 한 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어 "청와대 1인자의 자리에 앉았을 때 마음가짐이 또 달라지더라"며 "앉아보니 그 자리를 뺏기기 싫어하는 욕망들이 처음과는 달랐다"고 강조했다.
작품 곳곳에서 담긴 담배 피우는 장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천석중이 나오는 장면 자체가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게 많았다"며 "손이 안 갈 수가 없더라. 계속 손에 쥐어졌다"고 떠올렸다.
인상적인 장면에 대해서는 장건영(정우성)이 천석중에게 라면을 건네던 중 갑자기 취조를 받게 되는 신을 꼽았다.
정성일은 "천석중이 무너지는 모습을 단계적으로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했었는데 이 장면이 있어 변화하는 천석중의 모습이 보이더라"며 "그 장면에서 변기에 묻은 것은 초코파이였다. 미술팀이 깨끗하게 준비했다고 해 마음 편히 찍었다"고 웃었다.
"장혜진이 무속인? 놀라웠죠, 박지현 국제에미상 후보 대단한 일"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호흡을 맞춘 우 감독에 대한 인상도 전했다.
정성일은 "꼭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표현이 부드럽지만은 않으셔서 거리를 뒀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순수하면서도 귀여운 부분이 보이더라"며 "정말 짧은 한 신도 허투루하지 않았다. 반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무속인 신 여사로 등장한 장혜진과의 재회도 반가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앞서 디즈니+ 시리즈 '트리거'에서 합을 맞춘 바 있다.
"신 여사를 누가 할 지 궁금했는데 누나가 한다길래 놀랐죠.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어요. 작품에서 신경전도 벌이고 저를 가지고 노는데 제가 손을 내밀 수밖에 없게 만들었죠.(웃음)"
현장에서 대학로 출신의 배우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다고도 전했다.
그는 "최대훈, 이정은, 염혜란 등 대학로 무대에서 있었던 배우들이 잘 되니 반갑더라"며 "저는 대학로에서 유명하고 그런 사람도 아니었고 꾸준하게 버티다 정말 운 좋게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잘하는 배우들이 너무 많다" "많은 분들이 좋은 기회를 가져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으로 미국 국제에미상 여자연기상 부문 후보에 오른 배우 박지현에게도 축하의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은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자필'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정성일은 "너무 너무 대단한 일"이라며 축하했다.
끝으로 정성일은 '메이드 인 코리아' 시리즈에 대해 "애틋한 작품으로 남고 애정이 많이 간다"며 "배우로서 정말 현장에서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