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누가 기독교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가

김주용 연동교회 목사·CBS 자문위원 제공

어느 날 한 사람이 지혜자를 찾아왔다.

"방금 자네 친구에 대해 어떤 얘기를 들었는데 말이야…"라는 그 사람의 말을 중간에 끊은 지혜자는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 당신이 내게 그에 대한 얘기를 해주기 전에 우선 세 개의 체를 걸렀으면 좋겠네. 나는 타인에 대한 얘기를 듣기 전에 우선 사람들이 말할 내용을 걸러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네. '첫 번째는 진실의 체일세. 내게 얘기해 줄 내용이 진실인지 확인했는가? 두 번째 체는 선의 체일세. 내 친구에 대해 알려줄 내용이 뭔가 좋은 것인가? 세 번째 체는 유용성의 체일세. 사람들이 내 친구에 대한 얘기가 내게 전해졌을 때 나에게 유익한 일인가?'이네. 만약, 모든 것이 그렇지 않다면, 그래서 자네가 내게 알려주려는 내용이 진실도 아니고, 선하지도 않으며, 유익하지도 않은 일이라면 왜 굳이 그걸 말하려고 하는가?"라고 지혜자가 말하자, 그 사람은 더 이상 지혜자의 친구에 대한 뒷담화를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최근 한 목사가 CBS를 "기독교 방송이 아니다"라는 어조로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공격을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진실의 체와 선의 체, 유용성의 체를 거르지 않고 나온 것이었다. 공인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사가 계속해서 체에 거르지 않은 주장을 하는 이유는 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성직자로서 그의 의도가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는 것'에 있다면, 회개함으로 당장 멈추거나 성직을 내려놓고 정치적 선동의 자리에 서는 것이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진정으로 그 기독교 방송국이 예수의 이름으로 변화하길 원했다면, 마태복음 18장 15·16절을 통해 권면을 했어야 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이와 같이 CBS에 신학적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상식적으로 검증하는 순서는 이미 정해져 있다. 먼저 정관을 펼쳐 확인하고, 다음으로 재단이사회에 서면으로 질의한 후, 그다음 파송 교단의 회의석에서 발언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경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설교의 강단에서 '흑백논리'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근거 없는 사실을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말하려고 하는 것은 상대방을 괴롭히고 죽이려는 의도밖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목사를 비롯해 모든 목회자가 귀담아 들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과거 한국기독언론포럼 조사에 따르면, CBS가 가장 많은 신뢰를 받는 기독교 매체였다는 것과, 개신교인과 목회자들에게 가장 영향력을 주는 언론매체도 CBS였다는 것이다. 반면에, '2026년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조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주관)에서 목회자의 말과 행동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1%에 그쳤고, 기독교인 내부에서도 3분의 1이 목회자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에 더해, 그 조사에서 국민들이 꼽은 목회자가 개선해야 할 점 1위가 '교회 이익을 우선시한다'(24.6%)였고, 2위가 '정치적 발언 및 집회 참여'(21.6%)였다. 이 조사 결과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과거 '목회자의 윤리와 도덕성 문제'(21.1%)가 주로 1, 2위였다가, 최근 3위로 내려가고 2위 자리에 세속 정치에 관여하는 정치 목사가 되어가는 일부 목사들의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신뢰받는 기독교 언론매체를 공격하기에 앞서, 국민 5명 중 4명이 목회자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서로 맞장구를 쳐주는 가짜 뉴스와 거짓말이 그들 안에서는 통할지는 모르지만, 교회 밖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무례하지 않길 바라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목사의 말이 세 개의 체 모두를 거치지 않은 말임을 잘 알고 있다.

다시 세 개의 체에 대한 지혜자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지혜자에게 친구의 이야기를 전하려던 사람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지혜자가 그를 꾸짖어서가 아니라, 세 번의 질문 앞에서 자신의 말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신앙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회개의 시작이다. 특별히 목회자에게 자신의 말을 돌아보는 것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소명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 목사에게 부탁하고 싶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잠시 말을 멈추는 것이다. 내가 하려는 말은 진실한가, 선한가, 그리고 사람을 살리는 데 유익한가. 세 개의 체 앞에서 자신의 말을 다시 물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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