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배구 대한항공의 아웃사이드 히터 정한용이 코트 안팎에서 한층 더 무거워진 책임감을 안고 새 시즌을 조준한다.
정한용을 비롯해 임동혁, 임재영, 최준혁 등 대한항공 소속 국가대표 선수들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일본 사카이 전지훈련 캠프에 합류해 구단과 함께 본격적인 새 시즌 담금질에 돌입했다.
지난 5월 웨딩마치를 울린 정한용은 결혼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곧바로 국가대표팀에 소집돼 국제대회를 소화했다. 한 달에 아내를 만나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승무원인 아내 역시 일정이 바빠 집에 돌아와도 서로 엇갈리기 일쑤다.
정한용은 "아내보다 형들이나 동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며 "아내도 내가 국가대표로 뛰는 걸 자랑스러워하며 대표팀에 가는 것을 응원해줬다. 서운해하기보다는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은 걸 아쉬워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전지훈련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도 하루 이틀 정도만 함께 보낸 뒤 아내가 다시 비행에 나간다고 덧붙였다.
비록 함께 보내는 시간은 부족하지만, 가정을 꾸린 변화는 배구를 대하는 태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예전까지는 내가 가족들에게 챙김을 받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며 "확실히 마음가짐도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책임감은 코트 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더는 '유망주'라는 수식어 뒤에 숨을 수 없게 된 그다. 정한용은 "예전에는 실수를 해도 아직 어리고 연차가 많이 쌓이지 않았다는 게 어느 정도 핑계가 될 수 있었다"며 "이제는 같은 실수를 하면 '이런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선수인데'라는 시선이 생긴 것 같다. 나도 그런 걸 느끼면서 책임감이 훨씬 커졌다"고 강조했다.
태극마크의 무게감 역시 3년 전과 완연히 달랐다. 2023년 항저우 대회 당시 막내급으로 따라가는 입장이었다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코트 위에서 자신의 몫을 온전히 해내야 하는 위치였다.
그는 "첫 아시안게임 때는 형들이 주축이었고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며 "이번에는 언제 코트에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이 여러 번 나오다 보니 항상 '내가 뛴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했다. 한국 배구가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어 3년 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대회에 임했다"고 회상했다.
아쉬움과 수확이 공존한 대회였다. 한국은 이란과의 8강전에서 세트스코어 2-1로 앞서다 2-3으로 역전패하며 고개를 떨궜다. 정한용은 "(임)성진이 형이 앞선 대회부터 몸이 많이 올라와 있었는데 중국전에서 다치는 바람에 내가 뛰게 됐다"며 "중요한 역할을 맡았는데 원했던 만큼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더 해줬어야 하고 동료들에게 더 힘이 돼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동시에 아시아 정상급 팀을 상대로 '해볼 만하다'는 강한 자신감도 얻었다. 정한용은 "처음에는 대표팀 선수들 대부분 이란이나 중국을 상대로 '이기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도 "그런데 몇 차례 직접 맞붙으면서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는 '우리도 충분히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생겼고, 결과는 아쉽지만 자신감과 자존심을 찾고 끝낸 대회였다"고 평가했다.
4년 뒤 열릴 다음 아시안게임에서 정한용은 대표팀을 이끄는 고참급 선수가 된다. 그는 "기회가 온다면 동생들을 잘 이끌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꼭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시상대에 올라 뭐든 하나는 목에 걸고 돌아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번 대표팀 차출은 다가오는 V리그 새 시즌을 치르기 위한 소중한 과정이기도 했다. 정한용은 "2023년 항저우 대회 때부터 (한)지석이 형이 '대표팀에서도 경기를 많이 뛰어봐야 소속팀에 돌아와 시즌을 시작할 때 경기 감각을 빨리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욕심을 내서 최대한 많이 뛰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한용은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꾸준히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대한항공이 2년 만에 정상을 탈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현대캐피탈과의 최종 5차전에서는 팀 내 두 번째로 많은 14점을 폭발시켰다. 그는 "3, 4차전에서 팀도 그렇고 나도 원하는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다"며 "그래서 5차전에서는 앞선 경기에서 못했던 부분을 꼭 만회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생각보다 경기가 잘 풀렸다"고 미소를 지었다.
코트 안팎에서 무거운 책임을 짊어졌지만, 동료들과 사령탑 사이에서 친근하게 통하는 별명 '하마'는 여전하다. '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하던 버릇에서 선배들이 지어준 별명은 이제 헤난 달 조토 대한항공 감독까지 입에 달고 살 정도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정한용은 "이제는 다들 '한용아'보다 '하마'라고 부르는 사람이 더 많다"며 웃은 뒤 "그렇다고 별명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요즘은 '해보자' 같은 긍정적인 말도 많이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성장을 증명해낸 정한용의 시선은 이제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다. 대한항공과 함께 프로배구 역사상 전인미답의 고지를 밟겠다는 각오다. 정한용은 "형들에게 아직 2년 연속 트레블을 달성한 팀이 없다고 들었다"며 "우리가 처음으로 그 기록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