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기다림 끝에 단 태극마크, 아빠가 된 임재영의 '진짜 시작'

임재영. 대한항공 점보스 제공

남자 프로배구 대한항공의 아웃사이드 히터 임재영(27)의 배구 인생은 '기다림'이라는 세 글자로 압축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편에서 코트보다 벤치를 달구는 날이 더 많았고, 모처럼 찾아온 기회마저 불청객 같은 부상에 가로막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꺾이지 않았다. 묵묵히 땀방울을 훔치며 때를 기다린 임재영은 마침내 프로 데뷔 7년 만에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아시안게임 무대까지 누비고 돌아왔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일정을 소화한 뒤 소속팀으로 합류한 임재영은 "원하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아시아 강팀들과 부딪히며 '정말 한 끗 차이구나. 우리 대표팀도 많이 올라왔구나'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라며 "개인적으로도 국제대회를 치르며 리시브 부문에서 큰 자신감을 얻은 것이 소득"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2020~2021시즌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로 대한항공에 입단한 임재영에게 올해는 커리어하이와 같은 특별한 한 해였다. 지난 5일 대표팀에 승선한 그는 아시아배구연맹(AVC)컵을 시작으로 동아시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그리고 아시안게임까지 숨가쁘게 이어지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격은 여전히 선명하다. 임재영은 "무릎 수술을 받은 지 불과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대표는 내 배구 인생 마지막 꿈이었다"라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했고, 태극마크의 무게를 실력으로 증명해야겠다는 각오뿐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항공 입단 동기들과 선배들의 벽은 높았다. 정지석, 곽승석 등 국가대표 급 선배들이 버티고 있는 팀 내에서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상무 입대를 앞둔 2022~2023시즌 챔피언결정전 3차전 당시에는 15명 엔트리에도 들지 못하는 아픔을 맛봤다.

임재영은 당시를 떠올리며 "'나는 엔트리에도 못 드는 선수구나'라는 생각에 한없이 좌절했고 스스로에게 실망도 컸다"며 "'이대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군대에 가면 그저그런 선수로 잊혀지겠구나'라는 두려움까지 밀려왔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임재영. 대한항공 점보스 제공

하지만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잠은 죽어서 잔다'는 비장한 좌우명을 가슴에 품고 누구보다 독하게 시즌을 준비했다. 임재영은 "지난 시즌은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보낸 시간이었다. 사령탑이 바뀌신 후 내 모든 것을 어떻게든 각인시키기 위해 100%를 쏟아부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주전 정지석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임재영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코트 위에서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웠다. 그러나 시련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상승세를 타며 주가를 올리던 중 왼쪽 무릎 반월상 연골판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으며 또다시 짐을 싸야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잡은 동아줄이 끊어지자 마음도 통째로 무너졌다. 임재영은 "'나는 안 되는 운명인가 보다. 이제 내 배구는 끝인가'라는 절망감까지 들었다"고 당시의 참담했던 심경을 전했다.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가족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임재영은 "아내가 옆에서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주저앉았을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픈 아이까지 생겼으니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다시 한번 해보자'며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을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주장 정지석 역시 "형 걱정 말고 괜찮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며 다독여준 덕분에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결국 부상을 딛고 70여 일 만에 코트에 복귀한 임재영은 대한항공의 정규리그 및 챔피언결정전 정상 탈환에 힘을 보탰고, 그 상승세를 이어 태극마크까지 거머쥐었다. 아빠가 된 이후 처음으로 달게 된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는 "아내와 나는 국가대표가 된 것을 두고두고 기뻐했지만, 아빠가 자주 집에 들어가지 못하니 세 살 난 아들은 그리 반기지 않는 눈치"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아빠가 대한민국을 대표해 코트를 누비던 선수였다는 걸 자랑스러워해 주지 않겠느냐"고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좌절과 기다림은 결국 임재영이라는 선수를 더 단단하게 빚어내는 연단이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그는 주전보다는 조커나 교체 멤버로 그라운드를 밟는 일이 많았다. 이에 대해 임재영은 담담했다. 그는 "나는 언제나 기다리는 입장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한다"며 "아직 내 기량이 그라운드 주전을 꿰찰 만큼 완벽하지 않다. 간절하게 뛰고 노력하다 보면 또 언젠가 빛나는 날이 오지 않겠나"라고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이제 그는 기다림을 다루는 지혜를 터득했다. 엔트리 탈락이라는 바닥까지 겪어본 터라 어지간한 역경에는 멘털이 흔들리지 않는다. 임재영은 "많은 선수가 비슷한 고민과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이라며 "결국 자기 힘으로 한계의 벽을 깨뜨려야 비로소 대단한 선수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묵묵히 정진하다 보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고 조언을 건넸다.

다가오는 새 시즌을 바라보는 임재영의 각오는 남다르다. 마냥 순서가 오기만을 손 놓고 기다리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가 세운 최우선 목표는 화려한 타이틀이 아닌 '건강한 완주'다. 임재영은 "크고 작은 부상 없이 온전하게 시즌을 치러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괜찮은 한 해였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여기에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소속팀과 함께 2년 연속 '트레블'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고 싶다"고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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