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호남 지역 선교 거점으로 조성한 전남광주 순천 매산등 일대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되면서, 매산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다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개별 건축물에 머물렀던 보존 범위가 원도심과 매산등 일대의 공간 전체로 확대되면서 순천 근현대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역사문화공간으로서의 의미도 부각될 전망이다.
국가유산청은 7일 '순천 매산등 근현대역사문화공간'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
이번 등록 예고에는 공간 자체와 함께 로저스 선교사 가옥, 매산등 선교마을 옛 담장, 안력산병원 격리병동, 재활직업보도소 석조 교사, 우부자집 한옥 사랑채와 안채, 고산의원장 가옥 등 개별 유산 7건도 포함됐다.
선교에서 교육·의료까지…매산등에 쌓인 100년의 역사
매산등은 20세기 초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순천에 선교 거점을 마련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됐다.이후 교회와 학교, 병원, 선교사 주택 등이 들어서면서 기독교 선교를 비롯해 근대 교육과 의료가 지역사회에 자리 잡는 공간이 됐다.
현재 매산등 일대에는 순천 구 남장로교회 조지와츠 기념관과 순천 매산중학교 매산관 등 기존 등록문화유산을 비롯해 선교·교육·의료·주거와 관련한 근현대 건축유산이 밀집해 있다.
기존 순천부읍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원도심과 인접해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전통적인 원도심과 근대 선교를 계기로 조성된 공간이 맞닿아 있어 순천의 근현대 도시 변화 과정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여동 순천시 국가유산과 팀장은 "매산등은 순천에 기독교가 유입되고 교육과 의료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며 "원도심과의 연결을 통해 순천의 근현대 도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산등을 바라보는 시선도 개별 건축물에서 그 안에 축적된 사람과 생활의 역사로 넓어지고 있다.
순천시는 지난달 한국과 인도, 프랑스 등에서 온 청년 건축가와 예술가, 지역 활동가들이 참여한 '순천 매산등 국제건축도시현장워크숍'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5개 그룹으로 나뉘어 매산등에 머물며 건축물과 골목을 살펴보고 공간과 사람, 시간의 흔적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왜 이것이 유산이 됐는가', '건물만이 유산인가' 등의 질문을 통해 매산등의 의미를 다시 살폈다.
워크숍을 진행한 최영순 건축예술학박사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 건물만으로 유산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며 "그 건물이 우리에게 유산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주변의 사람과 역사, 이야기가 함께 읽혀야 한다"고 말했다.
워크숍을 담당한 김정희 순천시 국가유산활용팀장도 매산등을 시민과 다시 연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봤다.
김 팀장은 "우리는 잊힌 듯한 유산 공간으로 사람들을 다시 불러오는 일을 하고 있다"며 "예술이 남아 있는 한 유산의 이야기와 의미도 계속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개별 유산 넘어 공간 전체로…매산등 가치 재조명
이번 등록 예고의 특징은 흩어져 있는 개별 유산뿐 아니라 이들이 자리 잡은 공간 전체의 역사적 연관성에 주목했다는 점이다.대상은 순천부읍성 서문안내소에서 순천중앙교회와 매산등 일대로 이어지는 구역이다.
기존에는 역사적·건축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개별적으로 지정하거나 등록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건축물과 담장, 골목을 비롯한 주변 공간을 하나의 역사문화공간으로 묶어 보존·관리하게 된다.
로저스 선교사 가옥과 안력산병원 격리병동, 재활직업보도소 석조 교사 등 이번에 추가로 등록 예고된 유산들도 당시 선교와 의료, 교육, 생활상을 각각 보여주는 공간이다.
서양 근대 건축 양식과 지역의 건축 재료가 결합된 건축물뿐 아니라 선교사와 지역 주민들의 생활 흔적이 함께 남아 있다는 점도 매산등의 특징으로 꼽힌다.
최 박사는 이런 점에서 매산등을 '보이는 유산'과 '보이지 않는 유산'이 함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최 박사는 "한국에서는 유산을 나와 거리가 먼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며 "건물 자체뿐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사람과 역사,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함께 읽어야 유산의 의미도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원도심과 매산등 잇는다…역사문화축으로 확장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을 계기로 매산등의 보존과 활용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순천시는 2027년까지 매산등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개별 유산의 특성을 반영한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토대로 2031년까지 보존·정비와 활용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노후 시설을 정비하고 일부 문화시설을 리모델링하는 한편, 시민과 관광객이 유산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개선하고 개방 범위도 넓혀갈 예정이다.
특히 순천 원도심과 매산등을 연결하는 탐방 동선을 조성해 각각의 유산을 하나의 흐름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전시·교육·체험 콘텐츠를 확충하고 주변 문화공간과 음식점, 카페 등 지역 상권과 연계해 매산등 일대를 역사문화 관광거점으로 육성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장 팀장은 "관광 코스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이곳에 머무르는 관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며 "순천만국가정원과 순천만습지, 선암사와는 또 다른 순천의 역사문화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순천 매산등 근현대역사문화공간은 국가유산청이 2018년부터 추진한 '근대역사문화공간 활성화 사업'의 10번째 등록 사례가 될 전망이다.
국가유산청은 앞으로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한 세기 동안 선교와 교육, 의료의 흔적이 축적된 매산등은 이제 개별 건축물을 넘어 순천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문화공간으로 다시 조명받고 있다. 남겨진 유산의 가치를 보존하는 데서 나아가, 이를 오늘의 도시와 시민의 삶 속에 어떻게 이어갈지가 매산등의 다음 과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