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959개라는 전인미답의 통산 세트 기록을 세운 대한항공의 베테랑 세터 한선수(41)가 6일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시 전지훈련 캠프에서 새 시즌을 향한 각오와 배구 인생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한국 남자 배구 역사상 아무도 밟지 못한 고지에 올라선 그는 "하나 추가할 때마다 신기록이라 더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은퇴할 때 몇 개까지 쌓여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고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세월이 비껴간 외모와 기량의 비결을 묻자 "즐겁게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답한 한선수는 "이제 나도 피부 관리를 좀 해야 한다. 아내가 뭐라도 바르라고 챙겨주는데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 맨날 깜빡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2007-2008시즌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2순위로 대한항공에 입단한 한선수는 20년째 한 유니폼만 입고 팀을 지켜온 명실상부한 '원 클럽맨'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다. 대한항공이 2017-2018시즌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일궈낸 이래 통산 6차례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2022-2023시즌 남자부 세터 최초로 정규리그 MVP에 오른 데 이어 지난 시즌 두 번째 MVP 트로피까지 품에 안았다.
불혹을 넘긴 나이지만 코트를 향한 그의 마음가짐은 더 각별해졌다. 한선수는 "매 경기 매 훈련이 특별하다"며 "여전히 배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자연스럽게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화려한 커리어 뒤에는 쉼 없는 땀방울이 있었다. 20년 전 자신에게 지금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믿겠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은 그는 "나는 타고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재능을 가진 선수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지금도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젊은 후배들과 동일한 강도의 웨이트트레이닝을 소화하고 있는 그는 "당연히 힘들다"면서도 "어쨌든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내가 선택한 직업이다. 나이를 핑계로 삼고 싶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배구공을 잡은 이래 30년 가까이 야전사령관 자리를 지켜온 그의 배구 철학은 여전히 확고하다. 한선수는 "공격수가 때리기 좋게 공을 올려주는 것은 기본이다. 거기에 팀까지 잘 이끌어갈 수 있어야 좋은 세터"라고 정의했다. 한국배구연맹(KOVO) 기록 집계에 따르면, 한선수는 2016-2017시즌부터 2025-2026시즌까지 상대 블로커가 1명 이하인 상황에서 토스를 올리는 '러닝 세트'를 8466회 시도해 5308회 성공시키며 두 부문 모두 남자부 1위에 올랐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시야와 볼 배급으로 공격수에게 최적의 찬스를 제공해 왔다는 방증이다.
동시에 베테랑으로서 팀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무게가 더해졌다. 한선수는 "이제는 젊은 선수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잘 따라가면서 옆에서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호흡을 맞춘 미들블로커 조재영(35)이 오랜 시간 팀에서 변하지 않은 단 한 가지로 망설임 없이 "세터 한선수"를 꼽았듯, 한선수 또한 "계속 코트를 지키는 이유도 결국 팀 때문"이라며 "오랫동안 함께한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은퇴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번 2026-2027시즌은 구단과의 계약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한선수는 "마흔두 살 정도까지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정말 그 나이가 됐다"며 "일단 시즌을 치러봐야 앞으로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은퇴 후 계획에 대해서는 "가족들과 함께 외국에서 지내면서 영어 공부를 해보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년 가까이 지켜온 등번호 2번의 영구결번 가능성을 묻자 "처음에는 당시 남아 있던 번호라서 2번을 달았는데 굳이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영광일 것 같다"고 밝혔다.
미래의 거취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새 시즌 준비가 우선이다. 지난 4일 일본 SV리그 사카이 블레이저스와 연습 경기를 마친 한선수는 "일본 선수들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팀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굴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반면 우리는 아직 모든 면에서 더 안정적일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연습도 많이 하고 선수들끼리 대화도 많이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일본 전지훈련 일정을 모두 소화한 대한항공은 7일 귀국해 오는 19일부터 전남 여수에서 개막하는 KOVO컵 출격 채비에 돌입한다. 이번 시즌 대한항공과 한선수의 시선은 남자부 사상 첫 2년 연속 '트레블'(컵대회 우승·정규리그 1위·챔피언결정전 우승) 대기록을 겨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