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과 꿈꿀 기회부터 빼앗기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누군가에 의해 꿈과 목표를 빼앗긴 이들의 슬픔은 쉽게 달랠 길이 없다. 심지어 그 누군가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줘야 할 '국가'라면? 그 비통함은 타인이 가늠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들에게 '그래도 현실을 받아들여라'는 어설픈 조언을 감히 얹기도 조심스럽다.
8일, 개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되며 국가 주도 배상체계가 본격 시작된다. 1994년 첫 출시된 독성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책임을 이날부터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가 함께 나눠지며, 피해자들은 구제를 받던 처지에서 배상받을 권리를 지닌 주체가 된다. 하지만 피해 청년들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미 사라진 삶의 선택지들은 어떻게 배상받을 수 있을까'. CBS 씨리얼은 개정된 특별법 시행일에 맞춰, 20대 청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청년이라면 누구나 꾸는 꿈, 가습기살균제가 지웠다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 했더니 (의사가) '그거 절대 하면 안 된다, 하는 순간 죽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하다 못해 전투기 조종사나 해양 생물학자는 안 되냐고 물었더니 '더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꿈을 포기하라고 했어요". 또래 아이들과 달리 바라는 대로 꿈을 꿀 수는 없지만 연수는 최선을 다해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 1학기, 미적분학 시험을 볼 당시 기흉 증상이 올라온 탓에 시험을 포기해야 했다. 진단서를 냈지만 병가 처리가 되지 않아 F 학점을 받았다.
"그때 번아웃과 회의감이 온 것 같아요". 연수는 결국 대학을 자퇴했다. 그리고 취직을 시도했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수차례 봤다. 연수는 "장기 아르바이트는 거의 되지 않았다"며 "면접을 봐도 그냥 불합격 처리가 됐다"고 털어놨다.
건강 문제로 고통받던 와중 과거를 되짚어보니, 가습기살균제가 있었다. 어린 시절 가습기 증기를 모아 호호 불며 장난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부모님께 "저거(가습기살균제) 혹시 옛날에 우리 썼었냐?"고 물었더니, 부모님은 그렇다고 답했다.
1994년, 가습기살균제가 국내에 처음으로 출시됐다. 기업들은 경쟁하듯 제품을 판매했다. "내 아기를 위해" 사용하라는 광고 문구에 부모들은 너도나도 세균은 물론 물때까지 없애준다는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해 사용했다. 가습기살균제는 출시 직후부터 불티나게 팔렸고, 2017년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집계한 일부 가습기살균제 판매량만 998만 개에 달했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사용한 제품에는 독성물질이 들어있었고, 결국 아이의 건강을 해쳤다. 이현서(25, 이하 성씨 생략)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쌍둥이를 임신한 현서의 어머니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임신 중기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현서의 할머니 임재이(80)씨는 "그 무렵에 가습기살균제가 유행처럼 많이 퍼지고 좋다고 하니까 그걸 사다 사용한 것 같다"며 "(조산 가능성으로 인해 입원한) 병원에서도 사용했던 걸로 안다"고 회상했다.
결국 현서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18년, 천식과 폐섬유화 진단을 받았다. 운동을 좋아해 격투기까지 배웠지만 뛰기 힘들어 뛸 수 없었다. 특성화고에서 용접을 배워 취직을 해 열심히 일도 해봤지만, 천식으로 인해 그만둬야만 했다. 물류센터에서도 일을 해봤지만, 건강 문제로 인해 빨리 뛰지 못하는 현서에게 돌아오는 건 "왜 열심히 하지 않냐"는 윽박 뿐이었다. 현서는 결국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이럴 바엔 그냥 집에 있어야 되겠다 하고 그냥 집에 있었죠". 임재이씨는 "(현서는) 결혼도 안 한다고 한다. (질병이 유전되는 등) 나 같은 놈 낳으면 어떡할 거냐고 그래"라고 한숨을 내쉰다.
'국가 책임' 인정되기까지 30년…드디어 '국가배상' 체계로 전환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연수와 현서를 비롯한 청년들의 선택지를 앗아가는 속도는 빨랐다. 반면, 그 피해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책임이 인정되는 속도는 더뎠다.
2000년대부터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에 대한 의문 제기가 꾸준히 이어졌으나, 정부가 가습기살균제와 폐손상의 인과관계를 처음으로 공식 발표한 것은 제품 출시 후 17년 만인 2011년이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가 원인미상 폐손상의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며 그제서야 "제조업체들은 가습기살균제 출시를 자제하라"고 했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2024년에서야 법원은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국가는 가습기살균제 물질의 유해성 여부에 관해 충분히 검증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게을리 해 집단적 폐 손상이라는 피해를 발생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의 책임이 인정되기까지, 제품 출시 후 꼬박 30년이 걸렸다. 그 사이 2천 명 가까운 사람이 숨졌다( ※2026년 9월 기준, 피해 신청자 중 사망자 수 1962명).
국가가 배상책임의 주체로 전면에 나서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12월 이재명 대통령은 "이제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사회적 '참사'로 명확히 하겠다"며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을 세워 피해를 온전히 배상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석 당시 국무총리 또한 지난해 11월 "오랜 기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은 아픈 과정이 있었다"며 "피해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전 부처가 함께 힘을 합쳐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배상금은 가습기살균제 건강 피해로 발생한 손해를 대상으로 치료비, 간병비, 장해·유족배상(일실수익), 장례비, 위자료, 지연이자 등으로 구분된다. 기존에는 국가가 결정한 '구제급여'를 받아야 했으나, 이제는 실제 입은 손해를 심사, 산정한 '배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참고 :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
다만 배상액을 결정할 세부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세부 기준은 향후 배상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고시될 예정이다. 소득이 없었던 학생이나 질병 때문에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의 일실수익, 수십 년 뒤 나타날 수 있는 건강피해를 어떻게 산정할지도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박동욱 방송통신대학교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있어 가장 크게 우려되는 부분은 피해가 단시간 내에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며 "(배상 신청 기한을) 6개월로 해서 영구적으로 접수를 닫아버리거나 종료를 하게 되면 추가적인 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해 인정 범위가 좁다는 한계도 있다. 지난 7월 기준,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는 질환은 약 15개에 불과하다. 연수 또한 "(가습기살균제의 영향이) 뇌로 올라가서 뇌수막염에 걸리거나 그런 사람들은 아예 (피해가) 인정조차 안 된다"며 "방광암이 발생했다든지 아니면 뇌 쪽에 졸중이 발생했다 이러면은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임종한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도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제한적인 범위의 피해를 넘어 여러 범위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들이 연구를 통해서 규명되어지고 있는데 정작 행정 쪽에서는 그런 인정 범위에 대한 부분을 넓히는 작업이 충분히 진행이 되지 않은 상태"라며 "중증도 판정이나 질병의 범위에 대한 부분도 실제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피해하고는 약간 동떨어진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배상 자체가 실제 피해보다는 매우 낮을 가능성 또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아쉽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피해자들과 전문가들은 특별법에 충분히 담기지 않은 '청년' 피해자에 대한 지속적인 배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동욱 방송통신대학교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영유아기 때 화학물질에 노출됐던 청년 피해자들의 경우 잠재적 노동, 또 나이 들어가면서 활동할 수 있는 것들에 모두 손상을 입은 것"이라며 "세포가 손상을 받았으면 암으로도 갈 수 있고 여러가지 추가 질병들이 발생할 수 있다. 영유아기 때 노출된 청년 피해자들은 특별히 따로 추적 관리를 보다 엄격히 하는 등, 국가가 향후 몇 년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추적해서 건강 영향 피해 정도를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청년들 "저희도 일어나고 싶어요"
피해 청년들이 바라는 건 시혜적 지원이 아니다. 연수도, 현서도 말한다.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질병으로 인해 단절되었던 교육·취업의 기회를 복원하여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겁니다. 저희도 피해자라는 이름표를 떼고 자립해서 제 몫은 해내는 사람이라고 저를 사회에 소개하고 싶어요."
현서 할머니도 말한다. "지금 연수를 봐도 너무 아까워요. 너무 아까운 청년이에요. 정말 20대, 30대 젊은 청춘들이, 사람이 사는 데는 목표와 꿈이 있어야 이게 살아가는 것인데… 그걸 전부 빼앗겼기 때문에 슬픈 거지 어찌 보면 슬퍼요. 금전 몇 푼 주면은 그걸로 얼른 끝내버리려고 깨끗하게 청소해 버리려고…이런 애들을 그래도 그나마 이 몸 갖고서라도 앞으로 살아갈 길을 마련해 줘야죠. 난 정부에다 그거를 요구하고 싶어요".
이재명 정부는 "피해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온전한 배상'을 하겠다"던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꾸리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었다던 청년들. 그 청년들로부터 국가가 앗아갔던 '꿈꿀 기회', 이제라도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청년들의 목소리, CBS 씨리얼 영상을 통해 확인해보세요. 독성 가습기살균제 마셨던 아기들, 지금 이렇게 자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