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복귀를 위한 사회적 교섭 추진안이 대의원 정족수 미달로 표결에 부쳐지지 못한 채 유회됐다.
양경수 위원장은 사회적 교섭 논의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차기 집행부 선거를 앞둔 데다 민주노총이 제시한 3대 조건을 정부가 수용할 것인지 여부도 불투명해 당분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노총, 경사노위 복귀 또 무산…의결정족수 미달로 임시 대대 유회
민주노총은 지난 7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제85차 임시대의원대회(대대)를 열고 '사회적 교섭 추진 건'을 단일 안건으로 논의했다.임시 대대 개회 당시 참석자는 997명으로 재적 대의원 1766명의 과반인 884명을 넘겼다. 하지만 3시간에 걸친 토론 끝에 표결이 임박하자 안건에 반대하는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대거 회의장을 이탈하면서 최종 재석 인원이 790명으로 떨어져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유회됐다.
민주노총은 1999년 정리해고·파견법 합의에 반발하면서 경사노위의 전신인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후 공식적인 사회적 대화 기구에 민주노총 본부 차원으로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사회적 대화가 노동계의 양보만 강요할 뿐, 노사정 협의를 명분으로 정부 정책을 강행하는 거수기에 그친다며 보이콧해왔다.
민주노총이 줄곧 사회적 대화를 거부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행부가 대화 복귀를 추진할 때마다 번번이 반대에 부딪히곤 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집권 직후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신(新) 8자회의론'을 제시하고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하는 등, 현 경사노위 출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2018년 10월 당시에도 정부의 노동정책 우경화를 우려한 대의원들의 이탈로 임시 대대가 유회되면서 경사노위 참여가 무산됐다.
2019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시 양대노총 위원장과 연거푸 만나 경사노위 참여를 독려했지만, 이 역시 대의원대회에서 표결에 실패하며 불발됐다. 2020년에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노사정합의를 추진했지만 역시 부결됐고, 끝내 김 전 위원장을 포함한 집행부가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기도 했다.
현 양경수 위원장 체제에 들어서도 2024년 경사노위 참여를 추진했지만, 사회적 대화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지 못해 대의원 투표 끝에 부결된 바 있다.
이번에 민주노총 집행부는 경사노위 복귀를 거론하며 △합의제 운영 △산별노조 참여 보장 △경사노위 명칭 변경 3대 조건을 정부에 제시했다. 정부와 경영계가 '답정너'로 결론을 미리 정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협의'하는 대신 노사정의 '숙의와 합의'를 원칙으로 삼고, 각 의제와 관련된 산별노조가 노사정 대화에 직접 참여하는 등 명칭과 의결 구조를 개편한 새로운 사회적 교섭기구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날 논의한 안건에도 정부가 3대 조건에 합의할 경우 경사노위에 참여해 법 제도 절차를 완료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양 위원장은 "경사노위 밖에서 먼저 3대 원칙에 대한 합의를 확인받고 경사노위에 들어가자는 것"이라며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경사노위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양경수 위원장 "급변하는 흐름, 대화 불가피" 주장에도…경사노위 복귀 놓고 민주노총 내부 찬반 격돌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처럼 사회적 대화 복귀를 적극 추진하는 이유로 시대의 변화를 지적했다. 인공지능(AI) 확산·산업 전환에 따른 노동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업종·산별 교섭을 통한 초기업 단위 교섭을 추진하려면 사회적 대화의 판에 끼어들어야 한다는 논리다.양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사회적 대화, 사회적 교섭이란 이름으로 논의되고 추진돼왔던 것은 번번이 질곡과 갈등을 유발했고 그 끝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면서도 "가파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민주노총이 노동의 의제, 민중의 의제를 제기하고 전면화하지 않고, 이 시대적 변화를 주동적으로 마주하고 맞받아쳐 싸워나갈 수 없다는 고민 또한 깊다"고 호소했다.
이어 "왜 지금이어야 하는가, 더 많이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과연 실효가 있겠는가, 다양한 고민과 판단, 주장이 현장에 존재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사회적 교섭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투쟁이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듯, 교섭 또한 우리의 투쟁을 전면화하고 우리 요구를 알려내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토론 과정에서 경사노위 복귀에 반대하는 대의원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금속노조 현대글로비스 김미옥 울산지회장은 "메가특구특별법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법 개혁 시도에 버금가는 전례 없는 악법"이라며 △'메가특구특별법' 사회적 대화 참여 중단 △메가특구법 제정 강행시 총파업 등 저지 투쟁 등을 담은 긴급 안건을 제출했다. 다만 표결 결과 찬성 360명에 그쳐 과반을 얻지 못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어 건설노조 광주전남 김선옥 건설기계지부장은 "투쟁이 없는 교섭은 불가능하다. 어떤 교섭도 사측이 선의를 갖거나 운 좋게 얻어걸리지 않는다"며 "경사노위 참가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이날 '메가특구특별법' 원포인트 대화에 대해 "노동계 입장에서는 사실 뭐 먹을 거 없는 잔치에 초대된 느낌"이라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을 인용하며 "김 장관은 이미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가를 공식화하고 양보하라고 겁박하고 있다"고 짚었다.
김 지부장은 "위원장은 투쟁하면 되지 않느냐 말하지만,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면 우리가 경사노위를 왜 가느냐. 투쟁으로 돌파하면 그만 아니냐"라며 "민주당 정권 시절에 수많은 선배 열사들을 보냈다. 민주당 정권 시절에 역사의 오점을 남겼고, 그 대가는 아직도 감당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이런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조 이창배 위원장도 "정부가 밀어붙이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특고, 플랫폼 노동자에게 차별과 배제를 유지하는 법이고, 고용노동부는 성과급과 경영상 결정을 교섭 대상에서 빼는 시행 지침을 내놓았다"며 "입으로는 대화를, 손으로는 교섭권 지우기를 하고 있다"고 이재명 정부의 노동 정책을 비판했다.
이어 "2019년 탄력 근로제 확대에 맞서 경사노위 참여를 거부했던 결정을 뒤집으려면 사회적 대화가 무엇이 달라졌는지 답해야 한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협의가 아니라 개악을 멈출 힘을 조직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AI 전환 논의에서 고립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미 국회 사회적 대화에서 사용자 측은 규제 완화, 노동 유연성 치유, 해고 성과주의 강화를 요구했고, 이재명 정부도 노동 개혁 추진 의사를 밝혔다"며 "사회적 대화를 해도 국회의 전철을 반복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양경수 "논의 이어갈 수밖에 없어" 온라인 대의원대회도 고려한다지만
양 위원장은 유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석한 대의원들은 퇴장하는 것으로 입장을 드러낸 것 아닌가"라면서도 "반면 많은 대의원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사회적 교섭 추진의 필요성에 대해 의사를 피력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상적으로 의사 진행됐다면 가결 가능성이 높아서 반대 의지를 가진 동지들이 이석한 것 아니겠느냐"고 자신감을 보이고, "오늘은 결정 못했지만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정비하고 논의해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대 결과에 대해서도 "무엇보다 가부 간의 결론을 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했는데 그렇지 못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면서도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논의를 시작했던 이유인 사회 변화의 문제가 여전히 진행 중이고 해소되지 않은 조건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은 이 논의를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거듭 말했다. 사회적 대화 복귀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판단 아래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정부를 향해서도 "민주노총이 그만큼 어렵고 신중하게 논의해 가는 과정인 만큼, 정부도 전향적인 자세로 현장의 우려와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안을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에 힘을 실어줄 수 있도록 가시적인 변화를 보여달라는 주문이다.
민주노총은 내부 논의를 거쳐 향후 방침을 정리한 뒤 이른 시일 안에 별도로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온라인 대의원대회를 다시 소집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양 위원장은 "온라인 대의원대회는 임시 대의원대회 소집요건과 동일하게 7일 전 공지하면 소집할 수 있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어렵지는 않다"며 과거 김명환 전 위원장 시절 2020년 코로나19 극복 노사정합의를 추진할 때도 온라인 대대로 의사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양 위원장은 "내부적 논의를 고민하고 다시 설명드릴 자리를 마련하겠다"며 구체적인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차기 집행부 선거 코앞인데, 정부가 3대 조건 들어줄까…연내입법 선 그은 '메가특구 사회적 대화' 주목
양 위원장이 온라인 대대를 강행하더라도, 집행부로서는 이미 정부와 상당한 교감을 거친 안건을 그대로 올릴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이번 임시 대대를 보이콧하며 이탈했던 250여 명의 대의원들이, 회의장도 아닌 모니터 앞을 지켜 표결에 성공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들을 설득하기에는 양 위원장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민주노총은 오는 20일~24일 후보 등록을 진행한 뒤 차기 집행부 선거에 들어간다. 모든 조합원이 참여하는 직선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선거 국면에서 집행부가 사회적 교섭 관련 논의를 진행하기는 어렵다. 시간을 끌면 경사노위 복귀 여부 결정은 차기 집행부의 몫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애초 선거를 코앞에 두고 무리하게 사회적 대화 복귀를 추진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차기 집행부 선거를 마친 뒤 다시 처음부터 사회적 대화를 논의하면 때를 놓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사실상 양 위원장의 3선 장기 집권을 노리고 사회적 대화 복귀를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다.
양 위원장은 정부에게 전향적 자세를 요청했지만,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시한 3대 조건을 정부가 들어준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앞서 김지형 경사노위 위원장은 대회 전날인 지난 6일 "모두 열어놓고 논의하겠다"며 적극 협조하겠다면서도, "모두 입법으로 고쳐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양 위원장은 정부 측의 제안을 설명하며 "연말까지 최대한 수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물론 거대 여당이 국회를 장악해 법 통과 가능성이 낮진 않지만, 결국 국회에서 야당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문제인 만큼 정부의 모호한 약속만 믿고 경사노위 복귀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돌파구라면, 결국 돌고 돌아 '메가특구법'이다. 이미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참여와 별개로 '메가특구법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이날 "분초를 쪼개 연구해서 연내 입법하겠다"고 입법 시한까지 밝혔다. 메가특구의 주52시간 상한제 제외,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 연장, 파견제 확대 등 경영계의 요구에 맞서 노동계의 주장을 관철한다면 사회적 대화의 효용을 선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각종 노동특례가 고스란히 통과된다면 사회적 대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