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망했다고 욕망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파산한 뒤에도 경매 물건을 들여다보고 교도소를 다녀온 뒤에도 재개발 구역을 서성인다. 끝내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사지 못했어도 다음 기회를 찾는다.
윤보인의 새 소설집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다. 경매와 갭투자, 재개발, 전세사기, 상속처럼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예민한 돈의 문제들이 10편의 단편 속 일상으로 들어온다.
표제작의 화자는 역삼동 월세에 살면서도 여러 채의 아파트를 갭투자로 보유하고 있다. 전 여자친구의 아들과 압구정 거리를 걸으며 돈과 자본주의를 이야기하고 사지 못한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바라보면서도 기죽지 않으려 한다.
다른 인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파산 뒤 경매로 인생 역전을 노리고 횡령으로 복역한 뒤 한남동 재개발 지역을 기웃거린다. 실패는 이들에게 끝이라기보다 또 다른 계산의 시작에 가깝다.
윤보인은 이들을 쉽게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어가 되어야 한다"고 이를 악물고, 패찰 뒤에도 다시 등기부등본을 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약간의 농담과 자조를 섞어 보여준다.
이 소설집에서 부동산은 단순히 집이나 자산이 아니다. 한 번 무너진 삶을 다시 세워볼 수 있다는 기대이고 잃어버린 체면을 되찾는 수단이며 지금보다 조금 나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투명된다.
제목 속 '압구정 현대'도 그런 욕망의 상징처럼 읽힌다. 소설은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곳을 향해 자꾸만 고개를 드는 사람들의 우스움과 서글픔을 함께 담아낸다.
윤보인 지음 | 민음사
대한민국의 콜로세움 압구정과 청담. 누구에게는 선망의 공간이고, 누구에게는 끝내 벗어나기 어려운 서열의 무대다. 정수현의 장편소설 '청담동 다이어리'는 그 화려한 동네 한복판에 서른한 살 여자 셋을 세워 놓고 사랑과 인정 욕구, 우정과 생존을 그린다.
주인공 정유하는 압구정 한양아파트에서 살지만 현실은 바쁘다. 낮에는 A&R(Artists and Repertoire)로 일하고 밤에는 19금 인스타툰을 그린다. 부자들의 세계에서 자란 덕에 눈치와 감각은 빠르지만 자신의 처지도 누구보다 잘 아는 '생계형 럭키 걸'이다.
평온하던 일상은 전 남자친구에게 받은 다이아 반지를 중고 거래에 내놓으면서 흔들린다. 반지를 사겠다고 나타난 사람은 5년 전 사라졌던 첫사랑 채인서. 여기에 압구정·청담의 루머와 폭로를 퍼뜨리는 정체불명의 가십 앱 '청담 아이'까지 등장한다.
유하뿐 아니라 절친 미우와 인경의 삶도 함께 꼬인다. 사랑에서 번번이 상처받는 '청담 공주' 미우, 몰락 직전에도 야망을 놓지 않는 인경. 세 사람은 가십과 가짜 뉴스, 오래된 비밀이 뒤엉키는 가운데 점점 궁지로 몰린다.
이 소설의 재미는 인물들이 욕망을 감추지 않는 데 있다. 좋은 집, 비싼 옷, 완벽한 사랑, 사회적 인정. 모두가 원하는 것을 조금 더 솔직하게 원할 뿐이다. 청담의 욕망은 허영이면서 동시에 이들이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청담 아이'의 정체를 쫓는 과정은 로맨스와 미스터리를 함께 끌고 간다. 발렛 부스, 강아지 유치원, 명품 수선실, 파티룸 등 청담동의 은밀한 정보망도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